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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 에 대한 검색 결과로서 총 9건 이 검색되었습니다.

진료과/센터/클리닉 (1)
영유아 만성폐질환 클리닉

1. 대상질환 - 기관지 폐 이형성증 (bronchopulmonary dysplasia) - 기타 상세불명의 만성 영유아 폐 질환 (other complicated chronic respiratory problem in infancy, NOS) 2. 소개 기관지폐이형성증은 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으로 인해 인공환기요법과 산소 치료를 받았던 환자에서 발생하는 만성 폐질환으로서, 재태연령이 낮고 출생체중이 적은 미숙아에서 흔히 발생합니다.기관지폐이형성증은 아직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은 미숙한 폐에 손상이 가해짐으로써 일어나는데, 이러한 폐 손상은 여러 가지 인자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퇴원하기 전에 산소 공급을 중단할 수 있을 정도라면 장기적인 예후는 양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간 기계환기를 받은 영아, 뇌실내 출혈, 지속성 폐고혈압증, 폐성심, 그리고 생후 1세 이후까지 산소 의존성을 보이는 환자에서는 일반적으로 예후가 불량하여 장기적으로는 폐 및 심혈관계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 클리닉은 기관지 폐 이형성증 환자에서 폐 손상 정도를 정확히 평가하고 추적관찰 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성장과 발달을 추적 관찰하며 폐기능의 변화 및 호흡기 증상의 변화 등을 확인 합니다.악화 시의 병동 및 중환자실에서의 입원 치료, 이후 안정기의 정기적 외래 추적관찰에 이르기까지 잘 연계된 진료가 가능합니다. 특히 중증 난치성 환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임상 연구와 최신 지견의 실험적 치료까지 검토하여 질병에 대해 다면적으로 평가하고 개인에 가장 적합한 치료 방침을 결정하고 추천합니다.

어린이병원 > 진료예약 > 센터클리닉
정확도 : 55% 2018.04.17
건강정보 (3)

골수에서의 백혈구는 크게 림프구성과 비림프구성으로 나누어집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림프구가 아닌 비림프구성 백혈구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골수에서 골수모세포(암세포)가 통제되지 않고 만들어짐으로써 여러 가지 증상과 징후가 생기는 것입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골수와 골수 외 장기에 골수, 단구, 거핵 세포 계열의 미성숙 백혈병 세포(blast)가 증식되고 축적되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골수내의 침윤은 정상 조혈 기능장애를 일으켜서 치료 받지 않으면 보통 2개월 이내에 감염 또는 출혈로 사망하게 됩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소아 백혈병 가운데 25-30%를 차지합니다. 출생할 때부터 10세까지는 비슷한 발생 빈도를 보이나 10대 동안에는 약간 높은 발생 빈도를 나타냅니다. 발병에 있어 인종이나 성별의 차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15세 이하 의 소아에서 연간 100만 명당 5-6명이 발생 빈도를 보이고 있으며, 신생아 또는 선천 백혈병의 경우 대부분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입니다. 다른 암처럼 급성 골수성 백혈병도 전염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유전인지, 환경적 요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생 빈도는 다운 증후군, Fanconi 빈혈, Diamond-blackfan 빈혈, Kostmann 증후군, Bloom 증후군과 같은 유전질환에서 증가하며, 다른 악성 종양으로 치료 받은 경우에도 2차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 발생의 위험성이 증가합니다. 2022년 발표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소아암은 총 966건 발생하였으며 소아 급성골수성백혈병은 총 66건으로 전체 소아암 발생의 6.8%를 차지했습니다. 소아 인구 10만 명당 조발생률은 10.3명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 2022년 12월 발표 자료) 원인은 아직 불분명합니다. 동물실험 결과 바이러스 감염이 가장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방사선 조사, 감염, 약물 등이 의심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확증은 없습니다. 또 백혈병을 앓고 있는 형제자매 중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4배의 높은 발생률을 보이는데 가족적으로 백혈병의 집결빈도가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유전적인 원인을 드는 학설도 있습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병 원인을 밝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유전성 요인, 방사선 조사, 화학약품 등에 의한 직업성 노출과 항암제 등의 치료 약제들이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원인들에 의해 암유전자 또는 인접 부위의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암유전자가 활성화되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유전성 소인 - 다운증후군, 클라인펠터증후군, 파타우중후군 - 판코니증후군, 블룸증후군 - 쌍생아, 환자의 형제 등 가족에서의 발병 방사선 조사 원자폭탄 투여지역, 치료를 위한 X선 노출환자, 라듐 노출 노동자 등 화학약품과 그 밖의 직업성 노출 벤젠, 페트로리움 제품, 페인트, 방부제, 제초제, 살충제, 전자장 노출 항암 화학요법제 항암제, 특히 알킬화제(alkylating agent)와 토포아이소머라제 II(topoisomerase II) 억제제 담배 그외 다른 혈액 질환 발작성야간성혈뇨증, 골수이형성증후군, 골수증식성 질환 등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초기 증상은 발열과 오한, 출혈성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림프절이 붓고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쇠약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뼈나 관절 부위의 통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병이 상당히 진행할 때까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과 마찬가지로 증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혈액을 구성하는 정상세포(적혈구·백혈구·혈소판)들이 부족하여 생기는 증상이고, 두 번째는 백혈병을 일으키는 미성숙 골수구계 세포구가 여러 기관을 침범하여 생기는 증상입니다. 정상세포가 부족하여 생기는 증상은 우선 적혈구의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빈혈, 무기력, 식욕 부진, 맥박이 빨라지는 증상과 호흡 곤란, 그리고 심장 기능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백혈구가 부족하여 각종 감염으로 인한 발열이 있고, 혈소판이 부족하여 출혈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 증상은 미성숙 백혈병 세포들이 비장·간·골수·림프절·뼈·뇌 등을 침범하여 생기는 증상입니다. 뼈의 통증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비해 흔하지 않지만 비장과 간이 커지는 경우는 많습니다.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의 형태에 따라 목 주위나 겨드랑이 등의 림프절이 붓는 경우도 있으며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면 신경계의 증상도 나타납니다. 증상이나 진찰 소견에서 백혈병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혈액 검사를 시행합니다. 혈액 검사에서 빈혈, 혈소판 감소, 백혈구 수의 증가나 감소가 있는 경우에는 골수 검사를 시행합니다. 다른 질환에서도 골수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혈액 종양 질환인 백혈병의 경우 골수 검사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형태와 종류를 정확히 아는 데 필수적인 검사입니다. 이 검사를 통해 예후를 알 수 있고 치료방침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골수 검사를 하여 진단이 되면 중추신경계의 침범이 있는가를 알기 위해 척수액 검사를 하게 됩니다. 임상적 증상, 혈액 검사(CBC 검사), 골수 검사, 유전학적 검사 및 면역학적인 여러 가지 검사를 하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종류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FAB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표준입니다. 이러한 FAB 유형 분류를 보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M0에서 M7까지 8개의 아형으로 구분됩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도 진단시 이미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병의 단계나 시기를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다른 기관의 조직들을 파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예후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인자는 아닙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8가지 아형 중 M3인 급성 전골수구성 백혈병을 제외하면 예후나 치료에 대한 반응에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치료방법도 M3를 제외하면 치료방법도 거의 비슷합니다. Type FAB 분류 Acute myeloid leukemia(AML) Myeloblstic, no maturation M0 or M1 Myeloblstic, some maturation M2 Hypergranular promyelocytic M3 Myelomonocytic M4 Monocytic M5 Erythroleukemia M6 Megakaryoblastic M7 [표] 급성 백혈병의 아형 분류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의 목표는 최상의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관해를 유지하는 것입니다(완치시키는 것입니다). 향상된 지지요법과 함께 강화된 치료요법을 도입함으로써 질병 없이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항암화학요법 치료의 일차적인 방법은 항암제를 이용한 화학요법입니다. 백혈병 세포들이 일부 조직에만 부분적으로 많이 침범한 경우나 중추신경계를 침범한 경우에는 방사선 치료를 함께 시행하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환자 스스로의 암세포에 대한 저항력을 증강시키는 면역체계의 강화요법이 있는데 이를 생물학적 치료라고 합니다. 항암화학요법이란 백혈병을 일으키는 암세포(미성숙 골수구계 세포 )를 없애기 위한 약물치료를 말합니다. 화학요법에는 입으로 약을 먹는 경우도 있고 정맥혈관을 통해서 주사로 투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근육 내 주사나 피하 주사도 있는데 이러한 화학요법 모두는 전신적 치료입니다. 왜냐하면 약물이 혈관을 타고 몸 전체를 돌면서 백혈병 세포들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화학요법은 때로는 척수강 내 주사로 투여하는 경우도 있는데 뇌와 척수를 싸고 있는 척수강은 약물이 잘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직접 투여하는 것입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항암요법은 관해 유도요법과 공고요법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유도요법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관해 유도에는 대개 2~4가지의 약제들을 함께 사용합니다. 대개의 경우 5~10일 간 항암 치료를 통해 관해를 유도합니다. 완전 관해라는 것은 모든 질병의 증상이 없어지고 혈액과 골수가 정상적인 모양과 기능을 되찾는 것을 말합니다. 병의 관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관해 유도를 위한 항암 치료가 끝나고 골수가 회복된 이후에 골수 검사를 하여야 합니다. 이때 골수 검사 소견에서 골수의 미성숙 골수 모세포라는 것이 5% 이하가 되어야 합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서 완전 관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관해 유도가 성공적으로 되면 다음 치료를 하는 데 있어서 유리한 입장이 되고 결국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 관해가 되었다는 것은 병이 완치되었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즉 미세하게 잔류하는 암 세포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고요법 관해 유도 후 남아 있는 미세 잔류 백혈병 세포들을 없애기 위한 치료가 공고요법입니다. 먼저 공고요법은 관해 유도치료와 같거나 다른 약제들을 사용하며 1차 공고치료는 관해 유도에서 회복된 직후 바로 시행합니다. 동종 조혈 모세포 이식은 2차 공고치료 후 관해 상태에서 실행합니다. 골수 이식을 하지 않는 경우라도 장기적인 생존과 질환의 재발 억제를 위해서 4회의 공고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중추신경계 예방요법 소아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서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서와 같이 예방적인 중추신경계 예방요법을 받습니다. 중추신경계 예방요법은 척수강 내 주사만 하는 경우도 있고, 전신적인 고용량의 화학요법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치료는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백혈병 세포들을 죽임으로써 이들 암세포가 척수나 뇌를 침범하며 번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방사선 치료도 이러한 목적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치료가 끝난 후 장기적으로 추적 관찰을 하여 본 결과 원하지 않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학요법 때 사용한 약물에 의한 심장, 신장(콩팥), 청각 기능의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으며, 방사선 치료에 의한 성장과 발달의 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경우에도 중추신경계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중추신경계 재발이 20%까지 이릅니다. 특히 중추신경계 재발은 성인들보다 소아에게 더 많고 중추신경계 재발을 보이는 환자는 골수재발까지 오므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게도 중추신경계 예방치료가 효과적입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중 M3형의 전골수구성 백혈병은 출혈성 경향이 심하고, 범발성 혈관응고 장애 증후군(응고인자를 계속 사용, 응고인자가 고갈되면서 출혈을 하는 병)을 잘 일으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이들 암세포에서 분비되는 특별한 과립에 의해 생기는데 아트라(ATRA)라고 하는 비타민 A의 유도체로 관해 유도를 할 수 있습니다. 아트라는 아직 미성숙단계의 급성 전골수구성 암세포들이 완전히 성숙하도록 촉진하는 기능을 하여 완전 관해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약을 경구로 복용하게 하며 반응에 따라 30~90일 정도 사용하면서 관해를 유도합니다. 조혈모세포 이식 조혈모세포 이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이고, 하나는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입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소아에서는 1차 관해시 동종 조혈 모세포 이식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으로 인정됩니다. 그렇지만 형제 간에 조직 적합 항원이 일치하는 경우는 25% 미만이고, 점차 형제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어서 공여자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식 시기는 완전 관해 후 수개월 이내에 시행하게 됩니다. 강력한 전 처치(이식 전 치료) 이후 시행하는 조혈모세포이식의 성적은 5년 무병생존율이 55~80%입니다. 5년 무병 생존율이란 5년간 병 없이 지내는 생존 확률로 완치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실제 5년 이후 재발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은 조직 적합 항원이 일치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 적용됩니다.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은 완전 관해가 되었을 때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뽑아 보관해 두었다가 환자 자신의 암세포와 정상세포들까지 죽일 수 있는 정도의 강력한 항암요법과 방사선치료를 통하여 전처치 한 다음 보관해 두었던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방법입니다. 체외에서 자신의 조혈모세포 중에 포함되어 있는 암세포를 가려 제거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널리 사용되고 있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관해 유도요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치료 가능성은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지요법의 발달과 더불어 몇 가지 약제의 복합 항암 치료를 통해 최근 80% 정도의 높은 완전 관해 유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완전 관해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조혈 모세포 이식을 통해 완치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형제 간 조직 적합성이 일치하여 시행하는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의 경우 완치율이 약 80%, 자가 말초 조혈모세포이식의 경우 이보다는 떨어지지만 50~70%의 환자가 장기적으로 질병 없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혈액 내의 백혈구 수가 많거나(>100,000/㎕), 7번째 염색체가 단일 염색체일 때, 골수 이형성 증후군에서 발생하였거나 다른 암 질환을 치료한 뒤 2차적으로 발생한 경우에 예후가 나쁜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예방 원인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예방이 어렵습니다. 일부 인과관계가 증명된 경우에는 가능한 한 그 원인을 피해야 합니다. 다량의 방사선 노출과 벤젠, 담배, 페인트, 제초제 등의 화학물질에의 노출, 알킬화제, 에토포사이드나 독소루비신 같은 항암제에 노출, 클로람페니콜, 페닐부타존 등의 약제에 노출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또한 가족 내 백혈병 환자가 있는 경우 유전적 소인인 병인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관리 급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게 특별히 요구되거나 도움이 되는 식이요법은 없습니다. 다만 질병이나 치료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위생적인 식사 관리가 중요합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받는 경우, 대부분 음식을 가열 처리하여 만든 저균식을 먹게 됩니다. 퇴원하여 통원 치료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음식을 섭취해도 문제가 없지만 날것으로 섭취하는 과일 및 야채의 경우 깨끗이 씻고 껍질을 완전히 벗겨 먹는 것이 좋으며, 어패류나 육류는 되도록 조리해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완치가 될 수 있는 질환이며, 무엇보다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항암 화학 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이 많은 시간과 비용, 고통을 수반 하는 만큼 환자 자신과 가족, 의료진이 합심하여 치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입원치료를 제외하면 암환자라고 해서 일상생활에 구애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가급적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을 줄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해 의료진과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암환자들이 질병에 의한 압박감, 기능 상실, 치료의 고통 등으로 인한 불안 증상, 우울증, 불면증 등을 경험하는데, 많은 경우 심리치료, 웃음 요법 등의 행동 치료와 적절한 약물 치료에 의해 이러한 증상들이 완화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반드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항상 몸을 청결히 합니다. 인체에는 피부나 구강점막, 항문주위 등에 정상적으로 세균이 살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면역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세균들이 해가 되지 않으나, 항암 요법 중에는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어 오히려 정상 균 무리들에 의해 감염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항상 가글링과 좌욕을 생활화 하도록 합니다. 아이들을 대하기 전에 항상 손을 씻도록 하고, 방문객을 제한합니다. 손씻기는 각종 감염과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38℃ 이상 1시간씩 지속되거나, 한번이라도 38.3℃을 넘으면 열로 간주합니다. 열과 함께 심한 오한(온 몸이 떨림)을 경험할 때에는 세균 감염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병원에 문의하거나 응급실로 오도록 합니다. [AML 검사 및 치료 동영상] 조혈모세포이식 [full ver.] 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한 말초조혈모세포채집 안내 골수검사 안내 [full ver.] 골수검사 안내(골수흡인 및 생검) 저균식과 무균식(멸균식) 안내 [full ver.] 소아암환자의 영양관리 안내 [full ver.] 소아암환자의 감염관리 안내 [full ver.] 소아암환자의 가글 및 좌욕 안내

암병원 > 암정보교육 > 암종별의학정보
정확도 : 31% 2023.06.26

1960년대에 현재와 같은 원리의 양압환기(기계적으로 기도에 압력을 전달해 호흡을 도와줌. 현재의 '인공호흡', '기계 환기'는 대부분 이러한 개념을 가리킴)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급성으로 일어나는 양측 폐 손상으로 촉발되는 특정한 형태의 호흡부전의 형태를 인식하게 되었다. 1967년 애시보프(Ashbaugh)라는 의사가 호흡 곤란 및 산소 공급으로도 호전되지 않는 청색증(신체 조직에 산소 공급이 불충분하여 푸르게 보이는 현상), 그리고 가슴 방사선 사진상 보이는 '양폐야 침윤'(X선 촬영 사진에서 하얗게 보이는 부분을 침윤이라 하는데, 이것이 아주 광범위하게 양쪽의 폐에서 모두 보이는 것을 말함)의 세 가지를 보이는 12명의 환자군에 대하여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adult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 ARDS)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당시는 신생아호흡곤란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보여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명명되었으나, 실제로는 모든 연령에서 일어나므로 현재는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부르고 있다. 이후 급성 호흡부전 증후군의 정의는 명확히 정해지지 않고 있었다가, 1994년에 미국과 유럽의 전문가들이 모여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아래와 같은 정의를 제안하였다. 1) 급성으로 시작됨. 2) 가슴 방사선 사진에서 양폐야 침윤이 보임. 3) 가슴 방사선 사진에서 보이는 양폐야 침윤은 심장 기능이 병적으로 저하되어 나타난 것이 아님(정확히는 '좌심방의 압력 증가가 없음'. 보통 좌심방의 압력은 심장 기능이 병적으로 저하되었을 때 올라간다. 진찰 소견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도자라는 검사를 시행해 폐모세혈관쐐기압이 18mmHg 이하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4) 고농도의 산소를 흡입해도 동맥혈의 산소 함량이 올라가지 않음(구체적으로 동맥혈 산소 분압(PaO2)을 흡입하는 공기의 산소의 분율(FiO2)로 나눈 값이 200mmHg 이하. 이 비율이 200~300이면 '급성 폐 손상'이라 부른다.)

서울대학교병원 > 건강정보 > N의학정보
정확도 : 86% 2017.07.20
[건강톡톡][32편]행복한 임신, 똑똑한 출산 2부

안녕하십니까. 서울대병원 팟캐스트 ‘건강톡톡’ 산부인과 교수 이준호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우리의 소중한 아기를 만나기까지의 과정 –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님과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입니다. - 네, 최근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출산 연령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산모 평균 연령이 32세를 넘어섰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35세 이상인 경우에는 산모의 혈액을 이용한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고 바로 양수검사나 융모막검사를 통해서 염색체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원칙으로 돼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양수검사나 융모막검사가 어떤 건지, 동시에 산모 혈액을 이용한 기형아 검사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같이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사실 고령 임산부뿐만 아니라 우리가 태아에게 있어서 염색체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확진할 수 있는 검사는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아시는 양수검사라든지-양수검사라 하면, 양수는 쉽게 말하면 자궁 안에서 태아가 둥둥 떠있는 그런 물이 되겠습니다-그 안에는 태아의 세포가 있기 때문에 그걸 뽑아서 태아의 염색체 검사를 하는 것이고요. 아니면 임신 초기에 융모막 검사라는 것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대개 융모막 검사는 임신 10주 이후에, 한 13주 정도에 시행하게 되고요. 융모막이라 하면 나중에 그 부분이 임신이 진행되면 태반이 될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의 조직을 조금 떼어서 태아의 염색체 검사를 하는, 그런 융모막검사가 있고 아니면 태아의 혈액을 직접 뽑아서 하는 제대혈검사라는 게 있는데, 제대혈이라는 게, 한자로는 탯줄을 ‘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대라고 하면 잘 모르시는데, 그냥 한글로 얘기하면 ‘탯줄에서 피를 뽑아서 검사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탯줄에 흘러다니는 피는 산모의 피가 아니라 태아의 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탯줄에서 혈액을 채취하면 그건 태아의 혈액이 되겠고, 태아의 혈액을 통해서 염색체 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대개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을 이용해서 태아의 염색체 검사를 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사실은 태아의 혈액을 뽑는 탯줄혈액검사, 제대혈검사는 이 세 가지 검사 중에서 가장 위험성이 높은 걸로 돼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시행하지 않고 특별히 제대혈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만 시행하고요. 대개는, 태아염색체 검사는 앞서 말씀드린 융모막검사나 양수검사로 시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검사가 물론 위험성이 높지는 않지만 이 검사 자체로 인한 합병증이 있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과거보다 최근에는 이 합병증이 생기는 빈도가 굉장히 낮아져서 그렇게 최근에는 저희가 아주 위험한 검사라고 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검사를 안 받는 것보단 약간의 위험성이 있을 수 있겠죠. 그래서 개발된 것들이 산모의 혈액을 이용해서 태아의 염색체 이상을 선별하는, 저희가 영어로는 스크리닝(screening)이라고 하는데, 바꿔 말하면 진단을 하지는 않는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산모의 혈액을 이용해서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있을 위험성이 높은지 낮은지를 따져보는 그런 선별검사를 요샌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트리플 테스트라는 걸 했고 그 다음에는 쿼드 테스트라는 걸 했고요. 최근에는 더 검사가 발전되어서 대개는, 이런 검사들을 저희가 쉽게 산부인과에서는 태아 기형아 검사라고 보통 얘기를 하는데, 그 기형이라는 것이 모든 기형을 다 알아낼 수 있다는 건 아니고 대부분이 염색체 이상을 알 수 있는 것이고 최근에는 더 발달해서 1차, 2차, 두 가지 검사를 받아서 종합해서 결과를 내는 그런 정도의 수준까지 와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태아 선별검사로 90% 이상의 염색체 이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태아 선별검사에서 정상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전혀 없다’ 그런 뜻의 최종 진단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미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염색체 이상의 선별 검사의 결과는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이렇게 나오지 않고 염색체 이상에 대해서 ‘고위험군, 저위험군’ 이런 식으로 결과가 표시됩니다. 말 그대로 고 위험군이라는 뜻이지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고 해서 산모분들이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고요. 그냥 쉽게 말하면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다른 산모들보다 조금 높으니까, 지금 말씀드렸듯이 양수검사라든지 그런 확진을 하는 검사를 받아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너무 많이 걱정 안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제로 염색체 선별검사, 산모의 피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실제로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있을 가능성은 요새는 굉장히 발전을 해서, 검사에 따라서 확률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말할 때,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진짜로 있을 가능성은 5%도 안 된다고 저희가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95% 이상은 정상이 나오기 때문에, 양수검사를 해보면, 그러니까 너무 많이 걱정하실 거 없고요. 오히려 또 그 반대로 태아의 혈액검사에서, 태아 기형아 선별검사에서 저위험군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아예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절대로 없다’ 그런 뜻도 아닙니다. 그래서 산모와 남편의 성격이라든지 불안감이 심한 분들이라든지, 그런 분들에 있어서는 차라리 이런 양수검사 같은 걸 받아보실 것을 권유드리고요. 과거에는 그래서 35세 이상인 경우에만 양수검사를 추천하긴 했는데 -35세 이상인 경우에, 염색체 이상의 빈도가 조금 더 높아지고 그 35세란 나이에서의 태아가 염색체 이상을 가지고 있을 확률과 우리가 양수검사를 했을 때 합병증이 올 확률을 비교해서 나이가 35세가 넘은 산모에서 양수검사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게 가이드라인이 되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양수검사 같은 이런 검사의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최근에는 35세 이상이 넘지 않은 산모라 하더라도 그 이하의 젊은 산모라 하더라도 일단은 양수검사에 대해서는 저희가 검사를 받으실지 말지에 대해서 산모와 남편과 상의를 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인 결정은 산모와 남편 본인들이 하셔야 되는 것이고, 아마 최근에 이런 매스컴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보신 분들이 많이 있으실 텐데, NIPT라는 검사가 또 나왔습니다. NIPT도 산모의 피검사를 통해서 태아에게 염색체 이상이 있는지를 보는 어떻게 보면 최신의 검사이고요. 현재까지 개발된 것 중에서는 가장 정확도가 높은 검사인데 이것도 결국은 선별검사이지 확진검사는 아닙니다. 그래서 확진을 하려면 양수검사나 융모막검사를 받으셔야 되는 것이고 이 NIPT는 정확도는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까지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검사 비용이 굉장히 비쌉니다. 검사 기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모든 산모가 그 검사를 받으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특별히 받아야 될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NIPT 검사는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네, 기형아 검사 말씀을 잘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기형아 검사 하면 선별검사-스크리닝검사-하고 확진검사 –융모막검사나 양수검사- 이렇게 나눠지는 거고 둘을 어떻게 검사하느냐는 산부인과에 오셔서 의사선생님과 산모와 보호자가 상의를 해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한 가지는 선별검사에서 몇 대 몇이 나와서 굉장히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선별검사는 통과가 아니냐가 더 중요한 것이지 몇 대 몇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거기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네, 제가 지금 말씀을 듣고 추가하며, 선별검사의 결과는 쉽게 말하면 양수검사 같은 확진검사가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 그런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기형아검사 이외에도 임신 중에 몇 가지 검사를 더 하게 되는데요. 그 중의 하나가 당뇨검사입니다. 이게 어떤 검사이고, 만약에 임신성 당뇨가 진단이 되면 어떻게 관리하고 치료하는지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 사실은 좀 복잡한 문제이긴 한데요. 일반 산모분들께서 이해하기 쉽도록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임신성 당뇨병이라고 하면 여러분들이 흔히 들으시는 보통의 당뇨병과는 조금 다릅니다. 임신성 당뇨병은 임신 때문에 생기는 당뇨병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임신 중에 임신으로 인한 생리적 변화에 의해서 생기는 당 대사장애입니다. 어쨌거나 임신 때문에 생긴다는 전제가 들어가게 되는데요. 저희가 그런 전제로 임신성 당뇨병이라는 걸 진단하려면 사실은 진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대부분의 임신을 하게 되는 임산부들은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임신하기 전에 본인이 당뇨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검사를 받지 않는 산모들이 훨씬 많거든요. 그렇게 되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임신 전에는 정상이었는데 임신 때문에 당뇨병이 생겼는지를 알 수가 없는 거죠. 물론 검사를 받아 보셨던 분들은 알 수가 있겠지만, 그래서 실제로 임신성 당뇨병의 정의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임신 때문에 생긴 당뇨병이라는 게 맞긴 하지만 추가로 임신 중에 처음 발견되는 당뇨병도 임신성 당뇨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임신 전에 본인의 상태가 어땠는지에 대한 검사는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고요. 그러면 어떻게 진단하는지는, 이것도 몇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임신성 당뇨병의 진단법은 두 가지 단계를 거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임신 24 내지 28주에 금식과 상관없이, 바꿔 말하면 대부분의 산모들에게, 예를 들어서 “다음 번에 오실 때에는 임신성 당뇨병 검사를 할 예정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면 “굶고 와야 되나요?”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1단계 임신성 당뇨병 검사에서는 굶고 오실 필요가 없고요. 똑같이 식사 하고 편한대로 병원에 오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금식과 상관없이 임신 24주에서 28주 사이에 50g의 포도당을 복용하고 한 시간 뒤에 산모의 혈액을 뽑아서 혈당수치를 측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냥 정상범위에 들게 되면 그런 산모들은 임신성 당뇨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검사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고요. 만약에 이 ‘1단계 검사에서 수치가 좀 높게 나왔다’ 그렇다고 그 자체가 임신성 당뇨병이라는 진단검사는 아닙니다. 이거는 임신성 당뇨병의 가능성을 선별하는 검사이고 그러니까 임신성 당뇨병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산모들에게는 2단계로 자세한 검사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게 이제 100g 검사라는 건데, 그래서 100g 검사를 위해서는 공복으로 오셔야 됩니다. 여덟 시간 이상 금식하고 병원에 오셔서 아무 것도 드시지 않았을 때 공복 시의 혈당을 측정하고 그 다음에 100g의 포도당을 드시고 그 다음에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뒤에 채혈을 해서 혈당수치를 측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네 번의 피검사에서 두 번 이상 저희가 정한 기준을 넘게 되면 임신성 당뇨로 진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임신성 당뇨병이라고 진단을 받게 되면 산모분들이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시게 되는데, 임신성 당뇨라 하면 혈당 조절만 잘 되면 산모나 태아에게 큰 문제없이 건강한 애기를 낳으실 수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산부인과 선생님과 잘 협조하고 상의해서 혈당 조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게 이제 임신 전부터 있었던 원래 저희가 현성당뇨라고 얘기하는데, 원래 가지고 있던 당뇨병과의 차이인데요, 원래 당뇨병을 가지고 있던 분들은 이미 임신 초기부터 혈당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임신 초기의 고혈당은 태아에게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기형유발 요인이 되기 때문에 임신 전부터 혈당조절을 잘 해서 임신 초기에 혈당이 정상범위에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고요. 그렇지만 임신성 당뇨병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임신 때문에 생기는 당뇨병이고 따라서 임신 초기에는 그 산모의 혈당은 정상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게 됩니다. 그래서 임신 초기에 고혈당으로 인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그런 큰 차이가 임신성 당뇨병과 현성 당뇨병의 차이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듯이 임신성 당뇨병은 비록 임신성 당뇨병으로 진단되었다 할지라도 임산부의 혈당만, 저희가 정하는 이상적인 혈당 범위 안에만 유지하게 되면 임신성 당뇨병이 없는 산모와 똑같은 임신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진단 후에는 혈당 조절이 중요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대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으로 혈당을 조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으로만 혈당 조절이 잘 되면 그렇게 해서 분만을 하면 되겠고요. 만약에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으로 조절이 되지 않을 정도의 임신성 당뇨병이다, 그러면 저희가 인슐린을 투여하게 됩니다. 아마 인슐린이라고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인슐린이라고 하면 혈액 속의 포도당, 혈당을 낮추는 그런 주사가 되겠고요. 인슐린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저희가 과거부터 인슐린을 이용해서 임신부의 혈당을 낮췄습니다. 최근에는 먹는 혈당강하제, 먹는 약으로도 혈당을 낮춰도 태아에게 기형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보고들이 많이 있어서 실제로 먹는 혈당강하제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인슐린으로 임산부의 혈당을 조절하는 것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듯이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으로만 조절이 되지 않을 때는 인슐린을 사용해야 되겠고요. 인슐린을 사용해서라도 혈당만 잘 조절이 되면 건강하게, 건강한 태아를 분만할 수 있다, 그렇게 아시면 되겠고요. 인슐린을 쓸 때는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주사약을 이용해서 억지로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혈당을, 너무 주사가 많이 들어간다거나 하면 저혈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혈당보다 저혈당이 더 위험한 게요, 고혈당은 아주 높은 혈당이 올라가기 전까지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한 번쯤 고혈당이 된다고 해서 치명적이지 않지만 저혈당은 너무 심한 저혈당에 빠지면 정말 한 번만 저혈당이 심하게 오더라도 쇼크, 아주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인슐린을 쓰는 산모들은 꼭 저혈당이 생기지 않도록 인슐린 용량을 잘 조절해야 되겠고요. 그 다음에 나머지 인슐린의 용량 조절 같은 것은 병원에서 산부인과 선생님과 상의하시면 되겠고, 특히 또 인슐린을 쓰는 산모들이 주의하셔야 될 것은 분만 후에, 분만 후라 하면 태반이 떨어지고 나면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아도 산모에서 혈당량이 저절로 확 줄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만 전에 쓰던 인슐린의 양을 똑같이 분만 후에도 쓰면 방금 말씀드린 저혈당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거죠. 그래서 분만 후에는 인슐린의 양을 확 줄인다든지 아니면 아예 인슐린을 완전히 끊고 며칠간 혈당을 체크해 본다든지 해서 분만 후에 산모가 저혈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 저도 기억에 남는 산모가 있는데 임신성 당뇨 선별검사를 해서 수치가 높게 나오니까 공복을 안 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서 다시 검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선별검사와 확진검사를 생각해 보면 선별검사를 한다는 게 그걸 합격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거기에서 이상이 있으면 확진검사를 통해서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서 하는 검사니까 그걸 꼭 명심하고 산전진찰을 받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럼 이렇게 임신성 당뇨를 관리하고 치료하는데, 위험해서 치료를 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임신성 당뇨가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 제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당뇨라고 해서 임신성 당뇨와 현성당뇨– 원래 당뇨를 가지고 있던 경우-를 혼합해서 생각하시면 안 되고요. 임산부가 당뇨병이 있다고 하면 그게 임신성 당뇨병인지 원래 가지고 있던 당뇨병인지 꼭 구분해야 되겠습니다. 그건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게 방금 말씀드렸듯이 임신성 당뇨병으로 인해서는 태아기형이 증가하지 않지만 원래 당뇨병을 가지고 있던 경우에는 임신 초기에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태아에게 기형의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그런 큰 차이가 있고요. 그 다음에 인슐린을 쓰는 경우에 임신성 당뇨병부터 말씀을 드리면 인슐린을 써서 혈당조절을 하는 경우에 임신 32주~36주, 그쯤 임신 후반기에 인슐린을 사용하는 경우에 아직까지 저희가 정확히 원인을 알 수 없게, 설명되지 않는 갑자기 태아가 사망하는 그런 케이스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슐린으로 혈당을 조절하는 임신성 당뇨병 산모들에 있어서는 인슐린을 사용하지 않는 산모들보다 저희가 태아 상태를 더 잘 검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통 태동검사라고 하는 태아의 상태를 보는 검사들도 더 자주 하고 있고요. 그런 여러 가지를 추가로 해야 되고, 그 다음에 임산부가 고혈당이 생김으로 인해서 태아에게는 그 결과로 인해 고인슐린혈증이 생기고 태아가 커지게 되죠. 아마 잘 아실 겁니다. 당뇨가 조절이 안 되면 태아가 커지고 그러다 보면 분만 중에 태아나 산도 손상을 받을 가능성도 증가하고 제왕절개 수술의 빈도도 증가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태아가 분만이 된 후에 신생아에 있어서는 저혈당의 빈도가 높아질 수 있고요. 지금까지가 임신성 당뇨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원래부터 당뇨병을 가지고 있던 현성 당뇨병의 경우에는 임신 중에 산모나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사실은 더 큽니다. 그래서 산모에게 있어서는 전자간증, 소위 저희가 임신중독증이라고 얘기하는 건데 학문적으로는 전자간증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전자간증 또는 당뇨병성 신증, 당뇨병성 망막증, 당뇨병성 신경병증, 감염이나 케톤산증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고요. 태아에 관련되어서는 자연유산의 가능성이 증가하고 원인불명의 태아사망이나 태아기형 이런 빈도가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아가 분만된 후에는 신생아에게 있어서 호흡곤란증, 저혈당증, 저칼슘혈증, 고빌리루빈혈증, 이런 것들이 증가하기 때문에 사실은 임신 중에 이런 당뇨병이-임신성 당뇨병이거나 현성 당뇨병이거나- 있을 때는 정확한 혈당조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고요. 반드시 당뇨병이 있는 산모들께서는 산부인과 선생님과 상의해서 임신 중에 정상 혈당 범위에 있도록 혈당을 조절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임신성 당뇨는 애기를 분만하게 되면 대개는 혈당이 정상범위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 원래의 정상범위로 돌아오게 되는데 문제는, 그래서 젊었을 때 잘 모르는데 통계에 의하면 ‘젊었을 때 임신성 당뇨가 있었던 여성들은 한 20년 정도가 지나면, 그러니까 나이가 들면 한 50% 정도에서 당뇨병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한 연구가 있습니다. 당뇨병뿐만 아니라 심혈관계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다음 임신을 다시 하게 되면 임신성 당뇨병이 또 생길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번 임신이 끝나면서 임신성 당뇨에서 해방됐다 하더라도 지금 말씀드린 그런 위험성에 대해서 늘 염두에 두셔야 되고 실제로 분만 후에 한 6주 내지 12주가 지난 후에 다시 병원에서 당뇨병 검사를 해서 ‘아, 이제는 당뇨병에서 해방되었다’ 그런 평가를, 진찰을 받으셔야 되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말씀드렸듯이 나이가 들면서 당뇨병이 생길 위험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당뇨병에 대한 건강검진을 받으시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겠습니다. - 네, 최근 당뇨의 유병율도 증가하고 임신성 당뇨도 증가하는 추세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임신성 당뇨에 관해서 임신 중에 항상 산전검사를 받으시고 상담 받으시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또 많이 들어 보신 게 임신중독증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의학적으로는 자간전증 혹은 전자간증이라고도 하지만 많이 불리는 게 임신중독증이어서, 임신중독증이 발생하는 기전이 뭐고, 이게 뭐고, 그 다음에 치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지금 말씀 들으셨지만 정확한 용어는 자간전증이나 전자간증인데 그렇게 진료실에서 말씀드리면 산모분들이 잘 못 알아들으십니다. 그래서 저희도 옳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임신중독증이라는 용어를 흔히 쓰게 되고요. 이후에도 저도 그냥 임신중독증이라는 용어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과거에는 어떤 중독이 돼서 이런 병이 생긴다고 생각을 해서 임신중독증이라는 용어가 처음에 생겼던 거고요. 최근에 그렇지 않다고 알려져 있고요. 이게 사실은 위험한 이유 중에 하나가 산모에게서 특별한 증상이 없거든요. 산모 본인이 어디가 아프다, 아니면 뭔가 몸에 큰 이상이 생긴다 그러면 내가 이상상태에 빠졌구나 하고 조심을 하실 텐데, 임신중독증의 대표적인 증상이 고혈압이고요. 임신 전에는 정상혈압이었던 분이 임신 20주가 지나서 고혈압이 생기는 거죠. 그 다음에 과거에는 단백뇨–단백뇨라 하면 소변에서 단백질이 같이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이 단백뇨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걸로 임신중독증의 진단 기준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백뇨라는 것도 소변에 단백질이 빠져나가는지 안 나가는지는 본인은 모르거든요. 아무 증상도 없습니다. 단지 병원에 가서 소변검사를 해 봐야만 내 소변에서 단백질이 나가고 있는 걸 알 수 있는 거고요. 해 보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고 아무 증상도 없습니다. 그래서 증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산모들이 ‘내가 뭘 조심해야 겠다’ 그런 느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위험할 수 있는 요인이고요. 그렇지만 임신중독증 이런 말을 쓰게 되면 그러면 임산부들이 과거 연탄가스 중독, 식중독 그런 말을 썼듯이 ‘뭔가 큰 일 났구나’ 그런 경각심을 유발한다는 데 있어서도 임신중독증이라는 단어가, 정확하지 않은 병명이지만 그래도 조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임신중독증이라고 하면 방금 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과거에는 임신 20주 이후에 생긴 고혈압과 단백뇨, 두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걸로 기준이 되어 있었는데 최근에 그 기준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단백뇨는 대개 있을 수도 있지만 설사 없다 하더라도 임신 20주 이후에 발생한 고혈압과 함께 다른, 임신중독증으로 진단할 수 있는 다른 검사 이상소견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있으면 임신중독증으로 진단을 할 수 있도록 기준이 좀 바뀌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산모들께서 아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그래서 임신중독증이라는 용어가 있고, 임신 중에 산모에게 고혈압이 있을 때 저희가 몇 가지로 분류하는데 하나가 임신성 고혈압입니다. 이거는 원래 정상 혈압을 가지고 있던 산모가 임신 후반기에 다른 증상은 아무 것도 없고, 다른 임신중독증으로 진단할 수 있는 기준에 걸리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단지 그냥 혈압만 올라갔을 때 저희가 임신성 고혈압이라는 말을 쓰고요. 그 다음에 임신 전부터 고혈압이 있던 산모에게는, 그건 말 그대로 임신 전부터 고혈압이 있던 산모니까 임신 때문에 생긴 고혈압이라고 할 순 없죠. 그러니까 그건 그냥 만성 고혈압이라는 말을 쓰고요. 그 다음에 저희가 흔히 쓰는 임신중독증, 자간전증, 전자간증이라고 하면서 그 상태에서 경련, 과거에 저희가 간질이라고 쓰던 말 있죠. 의식을 잃으면서 경련을 일으키는 그런 상태까지 가면, 그러니까 경련, 발작을 일으키게 되면 자간증이라고 하게 됩니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상태가 되고 그래서 자간증까지 가게 되면 임산부 자신이나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임신중독증, 전자간증이나 자간증인 산모들이 자간증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경련을 하지 않도록 잘 조절하고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아까 질문하신 것 중에 그럼 ‘임신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가’ 그런 질문을 하셨는데, 사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을, 임신중독증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원인은 없지만 최근에 알려진 것으로 ‘처음에 임신이 시작되면서 태반이 자궁에 착상이 되면서 자궁 벽으로 침투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임신중독증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가설이 최근에는 잘 맞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완벽한 원인은 밝힐 수 없고요. 그 다음에 임신중독증은 치료는 어떻게 하느냐 할 때 사실 이것도 아직까지 특효적인 치료는 없습니다. 그런데 임신중독증이라는 게 말 그대로 임신 때문에 생기는 병이기 때문에 임신중독증을 치료하는 근본적인 치료법은 임신을 끝내면 됩니다. 임신을 끝낸다는 말은 분만을 한다는 말이 되겠죠. 그래서 아기를 낳게 되면 임신중독증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좋아지게 되는 그런 상황이고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이 예를 들어서 임신 만삭에 임신중독증이 생겼다 그러면 분만하면 되겠죠.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임신 7개월에 임신중독증이 생겼다 그러면 산모를 위해서는 임신중독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분만을 해야겠지만 그때 태아가 엄마 자궁 밖 세상으로 나오면 태아는 심각한 조산이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태아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임신중독증의 어려운 점이 이런 점들이고, 임신중독증의 최종적인 근본적인 치료는 분만이지만, 언제 어떻게 분만을 해야 될지 임신중독증이 생긴 산모에서는 임신중독증을 잘 조절하면서 그런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분만 시기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 임신 중에 초음파검사를 많이 하죠. 그래서 태아 이상 여부에 대해서 검사도 하고 관찰도 하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그렇고, 임신한 산모와 보호자들은 초음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배 속의 애기를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잦은 초음파검사가 태아에게 해롭지 않나 이런 의견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산부인과에서 시행하는 초음파검사로 인한 위험성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산부인과 초음파에 의해서 기형아가 발생했다는 보고나 기록은 없고요. 안전하게, 너무 걱정하지 않고 검사를 받으셔도 되는데, 이런 걱정거리가 제기된 근거는 사실 있습니다. 왜냐하면 초음파의 물리적 특성 중에 열을 발생시킨다는 그런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에너지의 초음파를 한 곳에 오랫동안 쪼이고 있으면 그 부위에 열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그런 게 사실 저희가 보통 산부인과에서 시행하는 검사로 의해서는 열이 발생하지 않게 다 조절이 되어 있고요. 또 태아가 움직이기도 하고 그리고 산부인과에서 불필요하게 한 곳만 계속 보지도 않거든요. 태아의 여러 곳을 검사하기 때문에 그런 이론적인 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또 초음파검사를 하는 기계에서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초음파의 양을 잘 조절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는 그런 게 발생하지 않지만 이론적으로는 초음파를 이용해서 열을 발생시킬 수 있고 그로 인해서 혹시 열이 발생한다면, 임신 초기의 태아에게 열이 발생하면 그 역시 태아에게 기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론적인 내용만 가지고 초음파도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얘기들이 있지만 실제 이뤄지는 검사에서는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고 또 검사를 하는 산부인과 선생님들도 그런 내용들을 다 알고 계시고 그렇기 때문에 초음파검사로 인해서 기형이 유발될 수 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겠고요. 그렇다고 초음파검사를 받지 않으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검사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거죠. 그런 이론적인 위험성보다는 임신 중에 태아 초음파검사로 인해서 여러 가지 산전 관리를 위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훨씬 유용하기 때문에 ‘겁이 나서 초음파검사를 피해야 된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단지, 불필요하게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겠죠. 의학적으로 필요한 검사는 얼마든지 받으셔도 되지만 그렇지 않고 비의학적인 목적의 불필요한 초음파검사는 받을 필요가 없다 그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임신 후에 체중 증가에 대해서 많은 질문이 있었고 궁금해들 합니다. 임신 후에 체중증가가 불가피하고 필수적이지만 지나치게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고요. 그래서 선생님은 임신 중에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의견을 한 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임신 중 다이어트라고 그래서 너무 식사를 안 하시고 영양섭취가 부족해지면 임신 중에는 아무래도 태아가 성장하고 발달해야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그래서 다이어트라기보다는 임신 전에 임산부의 체중상태가 어땠는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임신 중에 가장 적절한 보통의 평균적인 체중 증가는 한 11kg에서 13kg 정도, 좀 많더라도 15kg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평균이 12.5kg 정도로 알려져 있고요. 물론 이건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거는 임신 전에 좀 마른 체형을 가지고 계셨던 분은 임신 중에 좀 체중이 많이 늘어도 괜찮겠습니다. 그 반대로 임신 전에 체중이 좀 많이 나가셨던 분들, 좀 비만하셨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임신 중에는 제가 아까 말씀드린 평균 체중 증가보다 조금 적은 게 좋고요. 그거를 생각하시고 본인의 임신 중 체중 증가가 어떻게 돼야 될까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수치로는 임신 8주에서 20주까지는 1주당 0.3kg 정도 느는 것이 적당하다고 알려져 있고 임신 20주 이후에서 분만까지는 일주일에 한 0.4~0.5kg 정도의 체중증가가 바람직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은 산모 뜻대로 되지는 않죠. 그래서 쉽지 않은 얘기긴 하지만, 수치상으로 이런 통계가 있고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임신 중에 체중증가가 너무 많을 땐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는데, 아니면 임신 전부터 비만했던 산모에게도 여러 가지 산과적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대표적으로 아까 말씀드린 임신중독증이 생길 빈도가 높아진다든지 아니면 임신성당뇨병의 위험이 높아지고 애기가 커지는 거대아가 생길 수 있고 제왕절개 수술의 빈도가 증가한다든지 이런 위험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임신 중에 적절한 체중증가가 있는 것이 중요하고, 너무 적어도 문제고 너무 많아도 문제겠죠, 증가가요. 그 다음에 더 신경쓰실 것은 아예 임신 전에 좀 비만했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체중조절을 해서 적절한 체중으로 미리 맞춰 놓고 임신을 시도하시면 조금 더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임신 중의 여행 관련해서도 많이 질문들이 오고 궁금해 하십니다. 임신 중 장거리 여행은 출산 전 언제까지 가능한지 또 장거리 여행을 항공편으로, 비행기를 이용해서 가는 여행도 가능한지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 것 같은데 선생님 의견은 어떠신지요? - 사실 요새 외국여행도 많이들 가시고 그래서 여행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원칙적으로 임산부가 여행을 갈 때 가장 안전한 기간은 임신 중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임신 기간을 3등분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임신 초기에는, 쉽게 말하면 유산의 가능성이 제일 높은 시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조금 조심하는 게 좋고, 임신 말기에는 혹시 조산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조심하는 게 좋고, 그래서 장거리 여행 같은 걸 할 때 가장 안전한 기간은 통상 임신 중기, 임신 주수로 말하면 임신 14주에서 28주, 그런 정도까지가 가장 안전한 기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고요. 그렇지만 멀지 않은, 잠깐 다녀오는 정도는 이 외의 다른 시기에도 너무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새 해외여행 많이 가셔서 비행기도 많이 물어보시는데, 비행기 타고 가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하늘 높이 올라가면 기압이 떨어져서 문제없냐고 말씀하시는데 비행기 안에는 그래도 적절하게-그래도 물론 조금 떨어질 수 있겠지만-조절이 돼있으니까 저희도 심하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안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비행기는 타셔도 되고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항공사에서 너무 주수가 지난, 배가 많이 나온 만삭 임산부들은 아마 항공사에서 걱정이 돼서 잘 안 태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임신 36주 이하 정도에 비행기를 타시는 건 큰 문제없으리라 생각하고요. 단지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할 때 임산부들이 명심하실 건, 아마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임신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비행기 좌석이 좁은 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좁은 좌석에 똑같은 자세로 오래 동안 앉아 있으면 혈전이라는 게 생길 수 있습니다. 혈액순환이 잘 돼야 되는데 가만히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면 조금 떨어져서 혈전이라는 게 생길 수 있고 -피가 굳는 거죠, 혈관 안에서- 굳어서 피딱지 같은 게 생길 수 있고 그게 혈관에 붙어 있다가 혹시 떨어져서 중요한 혈관을 막으면 심각한 질환을 초래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임신을 하지 않은 사람도 요새 항공사 같은 데서 영화 같은 거 보여줄 때 보면 운동을 하라고 홍보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임산부는 특히 조심하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피가 더 끈적끈적해 집니다. 쉽게 설명하면 끈적끈적해져서 혈전, 피딱지가 생길 위험성이 높아지는 거죠. 임신하지 않은 사람보다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혈전이 떨어져서 혈관을 막으면 큰 일 나기 때문에 꼭 임산부들은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건 피하시고,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비행기 복도를 걸으시거나 해서 혈액순환을 도와주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필요하면 압박스타킹 같은 걸 착용할 수 있겠는데, 대부분의 산모들은 그렇게까진 안 하실 것이고, 주기적으로 움직여 주시고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비행기 복도를 걸으시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이건 자동차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 또는 명절 같은 때 길이 많이 막히거나 하면 자동차 내에서 오랜 시간 계셔야 될 수가 있는데 지금 비행기 때랑 마찬가지거든요. 오히려 자동차는 더 좁아서 걸어 다닐 수도 없죠. 그래서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시는 분들한테 꼭 말씀드리는 게 한 시간에 한 번씩은 꼭 휴게소를 들리셔서 거기서 산책 좀 하시고 다시 이동을 하시라고 주의사항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 팟캐스트 ‘건강톡톡’ 지금까지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도움 말씀에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님, 저는 이준호 교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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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 0% 2015.04.27
병원소개 (2)

국내 최초 태아내시경을 이용한 레이저 치료법 도입-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팀, 레이저 치료술로 쌍태아간 수혈증후군을 근본적 으로 치료하여 태아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일란성 쌍태아에서 치명적인 사망률을 보이는 쌍태아간 수혈증후군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법이 도입되어 태아 생존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팀(신희철, 윤보현, 전종관, 박중신, 박찬욱)은 지난해 8월부터 태아내시경을 이용하여 쌍태아간 수혈증후군을 치료하는 레이저 치료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시술하고 있다.'쌍태아간 수혈증후군'은 일란성 쌍태아에서 발생하며 치료하지 않는 경우 주산기(1) 사망률이 80-90%에 이르는 위험한 질환이다. 최근 산모의 고령화와 함께 보조 생식술을 통한 임신이 증가하고 있어 '쌍태아간 수혈증후군'은 늘어나는 추세이다. 쌍태아간 수혈증후군은 일란성 쌍태아의 10-15% 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쌍태아의 빈도는 1981년 1000 분만 당 10.02 건이었는데, 2000년에 16.65건, 2006년에 23.80 건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태아는 직접 산소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산모를 통하여 이를 섭취하며 이때 산모와 태아 사이에서 연결해 주는 것이 태반이다.태반 내에 두 태아간의 연결 혈관들이 존재하는데, 한쪽 태아의 동맥과 다른 쪽 태아의 정맥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 '쌍태아간 수혈증후군'이 발생하게 된다. 동맥 쪽 태아에서 정맥 쪽 태아로 지속적으로 혈류가 공급되어 마치 한쪽 태아에서 다른 쪽 태아로 수혈을 해주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 되기 때문이다.혈류를 공급해 주는 쪽 태아는 혈류 부족 현상이 나타나서 소변 양이 줄고, 양수과소증과 저성장이 보인다. 반면 혈류를 받는 쪽 태아는 혈류 과다로 인하여 심장에 부담이 오고, 온 몸에 부종이 오며, 소변 양 증가로 인한 양수과다증과 체중과다가 온다.기존 치료법은 '양수감축술'로 양수과다증이 발생한 태아의 양수를 제거해서 산모의 호흡곤란을 해결해 주고, 조기 진통을 예방하는 정도에 국한되었으나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었다.태아내시경을 이용한 레이저 치료법은 양쪽 태아를 연결하고 있는 혈관들을 없애기 위하여 자궁 안에 태아내시경을 삽입한 후 레이저를 이용하여 혈관사이에 흐르는 혈액을 응고시켜 태아 간의 혈류 연결을 차단한다.외국의 임상시험에 의하면 142명의 산모를 레이저 치료 그룹(72명)과 양수감축술 그룹(70명)으로 나눠 시술 후 생후 28일째 생존율을 비교한 결과 레이저 치료 그룹에서는 76%, 양수 감축술 그룹에서는 56%로 나타나 레이저 치료의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레이저 치료는 보통 임신 15~ 26주 사이에 시행된다박중신 교수는 '레이저 치료법은 병의 근본 원인인 양쪽 태아를 연결하고 있는 혈관들을 없애 개별적인 혈관시스템으로 나누는 것이다' 며 '이 치료법이 보편화될 경우 최근 늘어나고 있는 '쌍태아간 수혈증후군' 태아들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보충설명(1) 주산기: 주산기란 태아가 분만을 경계로 하여 외계의 생활로 이행하는 시기로 신생아 분만의 전후, 즉 임신 29주에서 생후 1주까지의 기간이다.사진설명:왼쪽 태아[동맥 쪽 태아]와 오른쪽 태아[정맥 쪽 태아] 사이에 혈관 연결이 있어서 쌍태아간 수혈증후군이 발생한 그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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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 0% 2012.02.29

태아 폐성숙과 관련된 양수내 표지자 발견 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팀은 태아 폐성숙과 관련된 양수내 표지자를 발견하여 미국산부인과 저널(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and Gynecology)에 발표하였다. 조산아에서 가장 심각한 합병증 중의 하나인 신생아 호흡곤란 증후군(respiratory distress syndrome)을 예방하기 위하여 그동안 조산이 임박한 산모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하여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기전에 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논란이 많았었다. 박중신 교수팀은 산모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하였을 때 양수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확인하기 위하여 스테로이드 투여 전과 투여 후의 양수에서 프로테오믹스 기법을 이용하여 프로테옴의 변화를 확인하였다. 또한 프로트롬빈단편 2, 알부민, 루미칸, 트랜스타이레틴의 4가지 양수내 표지 단백질을 발견하였다. 박중신 교수는 “표지 단백질들이 스테로이드 투여로 인하여 양수내에서 모두 감소함을 확인하였다”며 “이번 결과로 조산아 합병증 예방의 분자생물학적 기전 규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논문은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제30회 모체태아의학회에 제출된 1256편의 논문 중 최우수 8편에 선정되어 플레너리 세션에서 발표되었으며, 전 세계 산과 관련 연구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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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 87% 201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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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제 투약 후 발생한 아나필락시스 사례 표 정보 남/55세 기저질환 위암 과거력 약물 관련된 과거 이상반응 없었다. 약물이상반응 병력 요약 조기위암 수술 후 추적 관찰 위해 조영제 CT 촬영 위해 내원하였다. 조영제 사용 후 즉시 이상반응 나타나 보고되었다. 투약력 조영제(성분: 이오헥솔 ) 사 용 후 즉 시 전 신 두 드 러 기 , 가 려 움 , 호 흡 곤 란 증 상이 발생하여 항히스타민(클로르페니라민) 정맥 주사 후, 회복되었다. 6개월 후 추적 관찰 위해 CT 검사 시에는 시행 1시간 전에 스테로이드 및 항히스타민 전처치를 시행하고 조영제(성분: 이오비트리돌) 변경하여 사용하여 검사 시행하였으나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하였다. -검사 전, 혈압 119/79 mmHg, 맥박 81회/분, 산소포화도 99% -검사 후, 혈압 73/42mmHg, 맥박 122회/분, 산소포화도 84% 심한 어지러움, 호흡곤란 호소함. 산소 공급 및 에피네프린 근육주사 후 회복되어 경과 관찰 후, 퇴원하였다. 6개월 후 피부 반응 검사로 이오프로미드 조영제 선택 후 유발 검사에서도 음성 확인 후 전처치 시행하여 조영증강 CT 촬영하였고 무증상으로 검사 완료하였다. 조치 및 경과 향후 조영증강 CT 촬영 시 과거 과민반응 발생한 조영제 성분의 사용을 피하고 피부반응 검사로 조영제 선택과 충분한 전처치 후 시행하여야 한다. 약물이상반응카드 발급하여 환자에게 회피 조영제 교육하였다. 평가의견 약물에 의한 이상반응일 가능성 높음. 해당 약제 투여 후 즉시 이상반응 발생하였으며, 약제 중단 후 호전되었으므로 시간적 인과성 합당하다. 조영제에 대한 과민반응, 아나필락시스 허가사항에 기반영되어 있으며, 원인이 될 다른 사항 없었다. 재투여에 대한 정보 없으므로 약제에 의한 인과성은 약물에 의한 이상반응일 가능성 높은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상반응 정보 조영제에 의한 과민반응은 쇽(지연성 포함)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충분히 관찰하고 실신, 의식소실, 호흡곤란, 호흡정지, 심정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적절한 처치를 한다. 또한, 경증의 과민반응도 중증으로 진전될 수 있으므로 충분히 관찰한다. 호 흡곤란, 인․후두 부종, 얼굴부종 등 아나필락시양 반응(지연성 포함), 스티븐스-존슨 증후군(피부점막안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충분히 관찰하고, 발열, 홍반, 가려움, 눈 충혈, 구내염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적절한 처치를 한다. 때때로 발진, 발적, 두드러기, 가려움 등의 과민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미주신경 반응(혈압저하, 서맥 등), 발열, 드물게 혈압 상승, 빈맥, 부정맥, 안면창백, 심계항진이 나타날 수 있다. 천식발작, 드물게 호흡곤란, 기침, 재채기, 인 · 후두 불쾌감, 코막힘이 나타날 수 있다. 두통, 일시적인 시력장애, 졸림, 건망증, 드물게 어지러움, 무력감이 나타날 수 있다. 설사, 복부 불쾌감, 때때로 구역, 구토, 드물게 복통, 구갈이 나타날 수 있다. 영아 및 신생아를 포함한 소아에게 요오드화 조영제 투여 후, 갑상선기능저하증 또는 일시적인 갑상선 기능 억제가 드물게 보고되었다. 관절통, 발한, 드물게 권태감, 발열, 추위, 흉부불쾌감, 식은땀, 경미한 온감, 일시적인 금속성 맛이 나타날 수 있다. 참고문헌 1 . B e t t m a n n M A. 혈 관 조 영 제 : 기 존 및 새 로 운 매 체 비 교 . American Journal of Roentgenolo g y. 1 9 8 2 . 2. Fletcher EWL. 말초 혈관 조영술에서 iopamidol과 iohexol의 비교. British Journal of R a d i o logy. 1 9 8 4. 3. Nygaard B, et al. Iohexol : 갑상선과 갑상선 기능에 방사성 요오드 섭 취에 미치는 영향. Academic R a d i o l o gy . 1 9 9 8 . 4. Oraltag (R) 구강 용액, iohexol 구강 용 액 . 오 츠 카 제 약 ( F D A ) , 프 린 스 턴 , 뉴 저 지 . 2 0 1 5 . 5. McCra c k e n S, et al. 이온 및 비이온 혈관 내피 조영제의 현재 상태. Postgraduate R a d i o logy . 1 9 8 3 . 6. Dawson P. 조 영 제 의 화 학 독 성 및 임 상 적 부 작 용 : 재 검 토 . I n v e s t i g a t i v e R a d i o l o g y . 1 9 8 5 . 7. Cedgard S , e t a l . 저 삼 투 압 조 영 제 투 여 후 급 성 신 부 전 증 . L a n c e t . 1 9 8 6. 8. Bristedt P, e t a l . 비 이 온 성 저 삼 투 압 조 영 제 의 정 맥 내 주 사 후 폐 부 종 - H R C T 에 대 한 증 례 : 증 례 보 고 . Academic R a d i o l o gy . 1 9 9 8 .

서울대학교병원 약물안전센터 > 약물이상반응 > 약물이상사례
정확도 : 0% 2022.07.31

조영제 투약 후 발생한 아나필락시스 사례 [ 증례 #5] #증례5 정보 55세 남자 과거력 천식으로 타 병원에서 치료 중이며, 5년전 처음 조영제 CT 시행 시, 불편감 있어 주사 맞은 과거력이 있다. 가족력 약물유해반응에 대한 가족력은 없다. 병력 조기위암 수술 후 추적관찰 위해 조영제 CT 촬영 위해 내원하였다. Iohexol 조영제 사용 후 즉시 전신 두드러기, 가려움,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하여 Chlorpheniramine 1amp 정맥 주사 후, 회복되었다. 6개월 후 추적관찰 위해 CT 검사 시에는 시행 1시간 전에 스테로이드 및 항히스타민 전처치를 시행하고 iobitridol 조영제를 사용하여 검사 시행하였으나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하였다. -검사 전, 혈압 119/79 mmHg, 맥박 81회/분, 산소포화도 99% -검사 후, 혈압 73/42mmHg, 맥박122회/min, 산소포화도 84% 심한 어지러움, 호흡곤란 호소함. 산소 공급 및 에피네프린 근육주사 후 회복되어 경과 관찰 후, 퇴원하였다. 6개월 후 피부 반응 검사로 Iopromide 조영제 선택 후 유발검사에서도 음성 확인 후 전처치 시행하여 조영증강 CT 촬영하였고 무증상으로 검사 완료하였다. 평가의견 TREND 들어서 인과성 높음 평가 향후 조치 향후 조영증강 CT 촬영 시 과거 과민반응 발생한 조영제 성분의 사용을 피하고 피부반응 검사로 조영제 선택과 충분한 전처치 후 시행하여야 한다. 약물유해반응카드 발급하여 환자에게 회피 조영제 교육하였다. 조영제 유해반응 정보 조영제에 의한 과민반응은 쇽(지연성 포함)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충분히 관찰하고 실신, 의식소실, 호흡곤란, 호흡정지, 심정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적절한 처치를 한다. 또한, 경증의 과민반응도 중증으로 진전될 수 있으므로 충분히 관찰한다. 호흡곤란, 인․후두부종, 얼굴부종 등 아나필락시양 반응(지연성 포함), 스티븐스-존슨증후군(피부점막안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충분히 관찰하고, 발열, 홍반, 가려움, 눈충혈, 구내염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적절한 처치를 한다. 때때로 발진, 발적, 두드러기, 가려움 등의 과민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미주신경반응(혈압저하, 서맥 등), 발열, 드물게 혈압상승, 빈맥, 부정맥, 안면창백, 심계항진이 나타날 수 있다. 천식발작, 드물게 호흡곤란, 기침, 재채기, 인․후두불쾌감, 코막힘이 나타날 수 있다. 두통, 일시적인 시력장애, 졸림, 건망증, 드물게 어지러움, 무력감이 나타날 수 있다. 설사, 복부불쾌감, 때때로 구역, 구토, 드물게 복통, 구갈이 나타날 수 있다. 영아 및 신생아를 포함한 소아에게 요오드화 조영제 투여 후, 갑상선기능저하증 또는 일시적인 갑상선 기능 억제가 드물게 보고되었다. 관절통, 발한, 드물게 권태감, 발열, 추위, 흉부불쾌감, 식은땀, 경미한 온감, 일시적인 금속성 맛이 나타날 수 있다. 참고문헌 1) OMNIPAQUE 정맥 주사, iohexol 정맥 주사. GE Healthcare Inc (FDA), Marlborough, MA, 2) 2017. Bettmann MA : 혈관 조영제 : 기존 및 새로운 매체 비교. AJR 1982; 139 : 787. 3) Fletcher EWL : 말초 혈관 조영술에서 iopamidol과 iohexol의 비교. Br J Radiol 1984; 57 : 1043-1044. 4) Nygaard B, Nygaard T, Jensen LI, et al : Iohexol : 갑상선과 갑상선 기능에 방사성 요오드 섭취에 미치는 영향. Acad Radiol 1998; 5 : 409-414. 5) Oraltag (R) 구강 용액, iohexol 구강 용액. 오츠카 제약 (FDA), 프린스턴, 뉴저지, 2015. 6) McCracken S & Bettmann M : 이온 및 비 이온 혈관 내피 조영제의 현재 상태. Postgrad Radiol 1983; 3 : 345-353. 7) Dawson P : 조영제의 화학 독성 및 임상 적 부작용 : 재검토. Invest Radiol 1985; 20 : 84-91. 8) Cedgard S, Herlitz H, Geterud K, 외 : 저 삼투압 조영제 투여 후 급성 신부전증. Lancet 1986; 2 : 1281. 9) Bristedt P & Tylen U : 비이 온성 저 삼투압 조영제의 정맥 내 주사 후 폐부종 - HRCT에 대한 증례 : 증례보고. Acta Radiol 1998; 38 : 81-83.

서울대학교병원 약물안전센터 > 알림마당 > 약물이상반응 소개
정확도 : 0% 2022.07.26

교실 창설 및 창설 초기(1955년 - 1970년) 광복 전후의 시기부터 한국 전쟁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마취는 외과계 각 과의 초급조교에 의하여 실시되었으며 마취방법은 대부분 국소침윤 또는 척추마취였고, 전신마취는 에테르(diethyl ether)를 사용한 개방점적식 마취법을 사용하였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한 마취과학 강의로는 외과 총론 중 1시간이 배정되었고 강의내용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수기를 다룬 정도였다. 한국 전쟁을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의 마취과학에는 비록 초보적이기는 하나 비교적 근대적인 마취방법이 도입되었는데, 전쟁 중 한국 군의관들(부산의대 김인세, 가톨릭의대 정운혁, 연세의대 오흥근 등 28 명)이 미국 마취군의관들로부터 2 주간 마취과 교육을 받은 이후로 근대적인 마취방법이 시작되었다. 1955년 마취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국제협조처 원조사업의 일환으로 외과의 이동식 선생을 마취과 전공요원으로 미네소타대학에 2년간 파견하였으며, 1956년 1월 31일 마취군의관 William Evans 대위에 의하여 의과대학에서 마취과학의 첫 강의 이후로 1956년 2월 7일 처음으로 기관내 삽관을 이용한 전신 흡입마취법으로 직장암과 위절제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였다. 한편, 대한마취과학회는 1956년 11월에 창립되었으며 1957년 대한의학협회의 분과학회로 인정되었고, 1958년에는 세계마취과학회에 가입하였다. 1958 년 1월 에는 외과에 소속되어 있었던 마취실을 분리하여 의과대학에 마취과학교실을 신설하고 전임강사인 이동식 선생을 초대 마취과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때부터 마취과학 강의도 시작하였으며 마취를 위한 장비로 Ohio anesthesia machine (5대), nitrous oxide E, G cylinder (각 20개), cyclopropane D cylinder (10개), suction (10대), recovery cart (10개), Ohio oxygen administer, oxygen tent, Van Bergen respirator, Dinker's respirator, Bennet respirator, rocking bed 등을 구입하고, d-tubocurarine, succinylcholine (Anectine®), gallamine (Flexedil®) 등의 근육이완제를 비롯하여, 기관내 튜브, 흡인 카테터, 기도유지기, 후두경 등 미화 약 5만 불 가량의 장비를 도입하여 마취 시설과 회복실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부속병원 마취과에는 1957 년 미국으로부터 귀국한 이동식 선생이 있었을 뿐 인원이 부족하였으므로 외과로부터 의사를 파견 받아 수술환자의 마취를 담당하게 하였다. 1957년 9월 에 미네소타 대학의 마취과학 부교수인 James H. Matthews가 의학자문교수의 자격으로 2년간 병원에 상임으로 근무하게 되어 본 교실의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기여하였다. 1957년 11월에는 1956년 1월부터 5개월간 미국 텍사스 소재 Broke Army Hospital에서 마취과학을 연수한 곽일룡 선생이 입국하여 마취과학교실 최초의 무급조교로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58년 7월에 곽일룡 선생이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 그리고 수개월 후에는 이화영 선생이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 각기 수련받기 위하여 도미하였다. 1959년 에는 straight intern 제도가 실시되어 박경민 선생, 이원호 선생이 최초의 전공의로서 입국하였고 1960년에는 김석규 선생이 입국하였다. 1961년에는 straight intern 제도가 폐지되고 전문의 수련을 위한 군 입대 연기제도인 Kim's plan에 의해서 rotating intern으로서 김광우 선생이 입국하였고 그 후 이 제도에 따라 많은 동문들이 입국하였다. 1963년에 국민의료법 및 동 시행세칙(법률 제 221호)의 규정에 따라 전문과목 표방허가 자격시험과목에 마취과목이 포함되게 되었으므로 1963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문의시험이 시행되어 마취과 전문의가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 대에는 마취과에 전공의 지원자가 적어 진료상의 애로사항이 많았으므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부속병원 집행부의 양해 하에 외과의 협조로 마취과 전공의에게는 비공식적인 특전을 베풀게 되었다. 즉, 마취과 전공의의 경우 4년의 수련기간 중 전반 2년의 마취과 수련을 받고 나면 후반 2년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외과 각과의 외과수련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주도록 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특전을 통해 마취과에서 외과로 전과한 경우도 몇 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은 1970년대 이후에 마취과의 전공의 지원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1962년 에 이화영 선생이 전임강사로 발령받아 근무하였으나 1965년에 사직하였고, 1965년 7월에 박경민 선생이 전임강사로 마취과에 발령받았다. 1966년 9월에는 처음으로 이동식선생이 가톨릭의대 정운혁 선생과 함께 제 2회 아세아 오스트레일리아 마취과 학회에 참석하여 저체온 부문의 좌장을 맡았다. 1969년 7월에는 처음으로 신장이식 수술의 마취를 시행하였다. 이동식 교수 재직 시의 전신마취는 thiopental, succinylcholine (Anectine®), ether, d-tubocurarine, gallamine (Flexedil®), nitrous oxide, oxygen을 이용하여 조절호흡을 하였으며, 소아의 경우 cyclopropane을 사용하였다. Methoxyflurane과 propanidid (Epontol®)를 이용한 정맥마취도 제한적으로 시행되었다. 1960년에 axillary block이 시도되었고 1962년에 halothane이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며 척추마취 시에는 procaine, tetracaine (Pontocaine®), neperucaine 등의 국소마취제를, 국소침윤용으로는 procaine과 lidocaine (Xylocaine®) 등을 사용하였다. 근육이완제의 가역제로는 neostigmine, edrophonium (Tensilon®)과 atropine을, 승압제로는 adrenaline, noradrenaline, aramine, ephedrine 등을 사용하였고, 개심술시 저체온법도 도입되었다. 당시 마취과에 근무했던 인원은 교수가 2명, 거의 무보수로 근무하였던 전공의가 2명이었고 수술실이 4개, 회복실에 침대가 10대, 간호사가 2명 근무하였다. 부속병원 마취과의 초창기에는 한국 전쟁 후 군에서 마취보조 간호장교로서 많은 경험을 쌓고 제대한 박명자 간호원이 마취회복실 수간호원으로서 마취과 선생들을 음양으로 도왔으며 수술장 및 회복실의 간호일선에서 오랫동안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마취과의 독립 이후 그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심장과 폐 수술, 뇌수술 등이 시작되고 수술 후 회복과정 등에 관여하면서 마취과의 중요성이 인정되기 시작하였으며 incubator, warm mattress, oxygen tent, Ohio pediatric circle system 등이 도입되어 소아수술도 시작되었다. 회복실에서 외과계나 호흡기계 중환자 치료와 소아마비, 파상풍, 뇌염 등 내과환자의 인공호흡 관리도 시도되었으며 마취 특진제도 허용되게 되었다. 심폐소생, 장기 호흡관리, 응급외상의 마취, penicillin anaphylactic shock 등을 경험하였다. N2O 가스의 공급이 여의치 않아 서울공대 화공과 이기선 교수에게 부탁하여 이교수의 노력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N2O 가스가 생산되어 자체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1965년 처음으로 국내에서 CO2 absorber를 사용하게 되었다. 1967년에는 central piping system으로 가스가 공급되기 시작되었으며 5개의 수술실과 1개의 방광경실을 운영하며 마취를 담당하였고 마취 중 감시는 혈압, 맥박수, 정맥 절개법(venesection)에 의한 중심정맥압 측정을 하였으며 심전도감시는 심장 수술에만 시행하였다. 1967년 에 당시 마취과장이었던 이동식 조교수가 말레이시아의 말레야(Malaya)대학에 근무하기 위해 휴직하였으며, 후임 마취과장으로 박경민 조교수가 근무하였으나 박경민 마취과장도 미국으로의 이민을 위해 1969년 7월에 사직하였다. 하지만 그 직전인 1969년 3월에 곽일룡 선생이 조교수로 발령을 받았으며 곧 이어 김광우 선생이 전임강사로 마취과에 근무를 하게 됨으로써 마취과의 교수 부족 상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곽일룡 선생은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 3년간 마취과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전남대학 및 한일병원에서 마취과를 창설하였으며 본 대학 외래조교수로 임명되었다가 1969년에 조교수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마취과 전공의는 매년 1-3명씩 지속적으로 입국하여 연차별 전공의 교육이 가능해졌으며, 1969년부터 마취과 전공의 수련 기한이 2년에서 4년으로 바뀌었고 김용락, 신광일 선생이 4년 수련 과정을 이수한 첫 마취과 전문의가 되었다. 이 시기의 마취과 의사들은 각 외과의들의 마취에 대한 무지와 편견, 마취과 의사에 대한 비협조 그리고 절대적인 인력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근무를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이 이동식 선생, 이화영 선생, 박경민 선생 등이 중도에 사직을 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마취과의 초창기에 이동식 선생, 이화영 선생, 박경민 선생 등의 헌신과 노력이 오늘날 마취과의 초석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시기에 시행된 수기 및 주요 약제의 도입을 살펴보면 1967년경부터 쇄골하정맥 삽관술이 처음 시술되었으나 1986년경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고, 마취약제로 에테르는 1959년부터 사용되었으며, halothane은 1962년경에 처음 도입되어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마취 전처치제로는 1960년부터 atropine과 meperidine (Demerol®)을 사용하였는데 meperidine은 1974년 경까지 전처치제로 많이 사용되었다. 1970년에 전신마취 2,039례, 부위마취 1,158례, 국소마취 248례, 총 3,445례의 마취시행 횟수를 기록하였다. 발전기(1971년 - 1989년) 1970년 서울대학교에서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임상 각 과장을 최초로 임명하여 곽일룡 선생이 마취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72년 3월 1일에 이르러 곽일룡 선생이 초대 마취과학교실 주임교수로 임명됨으로써 마취과학교실은 명실상부한 독립 교실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2년 에는 김용락 선생이 마취과 조교로 입국하여 1975년 3월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김용락 선생은 1978년부터 2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병원 마취과에서 연수 중 국내 최초로 국제학술지인 Anesthesiology에 2편의 연구논문을 게재하였으며, 이 중 한편은 1979년도 ASA annual meeting의 resident contest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 김광우 선생은 1972년부터 2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 마취과에서 연수를 하고 FACA (Fellow in American College of Anesthesiology) 자격을 취득한 후 1974년 8월 에 귀국하였다. 김광우 선생의 귀국은 한국에 성인성 호흡곤란증후군(ARDS)의 개념을 도입한 계기가 되었고, 이때부터 동맥혈 가스분석기가 마취과에 도입되면서 환자의 호흡관리 및 중환자관리를 마취과의사가 주도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1974년에 마취과학교실에 대학원과정(석, 박사)이 개설되었는바, 그 이전에는 외과학교실에서 학위과정을 이수하였다. 1978년에 이건일 선생이 교수요원으로 들어왔으나 미국으로의 이민을 위해 1979년에 퇴직하였고, 마취과학교실의 발전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교수요원의 충원이 이어져 1979년 9월 1일 국내 최초의 전임의사제도에 의해 김성덕 선생이, 그리고 1980년에 전임의사로 함병문 선생이 근무하기 시작한 후 각각 그 이듬해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았으며, 1983년에 고홍 선생, 1985년에 오용석 선생, 1986년에 이상철 선생, 1987년에 김종성 선생, 1989년에 이국현 선생이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아 본 교실의 발전을 위하여 근무하였다. 1975년 도의 마취는 전신마취 3,006건, 척추마취 1,281건, 부위마취 17건으로서 6개의 수술실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의 마취는 흡입마취제로 halothane과 nitrous oxide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주요한 감시 장비로 심전도 감시 장치가 불과 1대 보유 중이어서 환자의 상태를 감시하는 방법은 극히 미진하였다. 1978년 도에 완공된 신축병원에는 16개의 중앙수술실, 2개의 방광경실과 4개의 산과수술실 등을 갖추게 되었고 아울러 새로운 환자감시장치 및 수기들이 도입되면서 마취진료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늘어난 수술실 수에 비해 마취과 의사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수련과정에 있는 인턴이 마취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인턴의 마취 참여는 현재까지도 지속되어 오고 있다. 또한 이때 김광우 선생이 초대 수술부장으로 임명되었고, 신설된 호흡기계 중환자실을 마취과에서 운영하여 오늘날 서울대학교병원의 각종 중환자실의 운영요원을 양성하였고 중환자관리의 질적 향상을 주도하였다. 1984년 곽일룡 선생은 대한구급의료학회 회장에 피선되었고, 1986년 7월 16일부터 김광우 선생이 주임교수 및 마취과장으로 취임하였다. 1986년 9월에 홍콩에서 개최된 아세아-오세아니아 마취과학회에서 곽일룡 선생이 회장으로 피선되었고 이때에 김광우 선생이 '1990년도 아세아-오세아니아 마취과학술대회'의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990년에 아오학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주도하였다. 1984년 11월 부터 심폐소생술(CPR)팀이 운영되기 시작하였고, 1985년 12월에는 그동안 11층에 위치해 이용이 불편하였던 마취과교수실 및 의국이 본관 2층으로 이전하였다. 1985년도에는 수술실 5실이 증축되어 21실의 수술실이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수술시행 건수도 많이 증가하여 1985년도에 전신마취 10,935례, 척추마취 1,459례, 국소마취 4,480례를 시행하였다. 1985년 10월 15일 국내 최초의 대학병원부속 소아병원이 개원하면서 소아마취분과 분과장 및 소아수술실장으로 김성덕 선생이 부임하게 되었고 본원 근무 교수 중 1명이 순환으로 소아마취분과에 근무하면서 8개의 수술실에서 이루어지는 마취를 담당하였으나 1989년 11월 부터 김종성 선생이 소아병원에 고정 근무하게 되었다. 1986년 2월 3일 소아병원의 수술실에서 처음으로 소아수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1987년 10월 23일부터 11월 2일 사이에 미국 Sandpoint에서 거행된 '소아 및 신생아 중환자에 대한 심포지엄'에 김성덕 교수가 참석한 이후 소아 중환자관리시 폐내진동환기법(IPV: intrapulmonary percussive ventilation)을 도입하여 소아중환자의 수술 후 폐합병증의 빈도는 물론 수술 후 소아 중환자실에서의 체류 일수를 경감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1987년부터는 그간 소아환자에게 고통을 주던 근육주사에 의한 마취전처치법을 완전 배제하고 경구용 마취전처치제인 D-syrup (diazepam 0.6 mg/ml)을 개발해서 소아에게 사용하여 큰 효과를 보았으며, 소아수술환자의 중심정맥로 확보시 정맥절개법(venesection)를 시행하던 것을 모두 쇄골하정맥이나 내경정맥을 이용한 중심정맥 삽관술로 대체하여 시행하였다. 1988년 3월 17일 소아병원에서 국내 최초의 뇌사자의 간을 제거하여 간이식마취를 성공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바야흐로 90년대 이후 장기이식의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마취영역의 장을 열게 되었다. 마취과 교수들의 세부전공분야는 1987년도부터 나누어지게 되었다. 김광우 교수가 중환자관리 및 노인마취, 김용락 교수가 심장마취 및 부위마취, 김성덕 교수가 소아마취 및 폐병태생리, 함병문 교수가 심장마취, 고홍 교수가 산과마취, 오용석 교수가 뇌신경마취, 흉부마취 및 수술 후 통증치료, 김종성 교수가 소아마취, 이상철 교수가 통증치료, 이국현 교수가 이식마취를 담당하였다. 마취기록지는 오용석 선생에 의해 1989년 3월에 소아 마취기록지가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 성인 마취기록지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본원에서 A, B, C, D 4개의 rosette으로 구분하여 전공의들이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3월부터이다. 이 시기의 마취과학 분야에서 주요 수기 및 약제의 도입을 살펴보면 1974년에 요골동맥삽관에 의한 혈압측정을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동맥혈가스분석을 시행하여 환자의 진료에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 최초의 요추부 경막외마취는 1979년 제왕절개술시 시행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hanging drop method를 주로 사용하다가 그 후 loss of resistance 방법 등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1987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오늘날 산과마취 및 기타 부위마취 또는 통증치료 등에 널리 시행되고 있다. 1979년경부터 Swan-Ganz catheter에 의한 폐동맥 삽관술이 시술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수기의 본격적인 사용은 1986년부터였다. 또한 1979년부터 COP (colloid oncotic pressure)의 측정이 이루어졌다. 1982년경부터 유도저혈압마취 방법이 도입되었고, 1984년 1월 12일 개심술 마취 3,000례를 기록했다. 또한 1986년경부터 중심정맥관 삽관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시작하였는데 Seldinger technique에 의한 중심정맥 카테터 삽입술이 본원에서도 도입되어 외과의에 의한 환자의 정맥절개법(venesection)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경정맥 삽관술을 시도하여 어렵게 성공하였으나 차차 쇄골하정맥 삽관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중심정맥 삽관술이 시행되어 현재에는 전공의들도 숙련되고 안전하게 중심정맥 삽관술을 시술하고 있다. 이 시술에 사용된 catheter도 처음에는 single lumen catheter만 사용하다가 1991년 초부터 triple lumen catheter, 1992년 초부터 double lumen catheter를 사용하였다. 1986년경부터 flexible fiberscope에 의한 기관내 삽관이 시행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당시는 flexible fiberscope가 마취과에 구비되지 않아 내시경실의 굴곡성 내시경을 이용하였으나 1988년 12월 29일 마취과용의 flexible fiberscope (Olympus 제품, ENF-10)가 구입되어 본격적인 flexible fiberscope를 이용한 기관내 삽관과 전공의 수기교육이 가능하게 되었다. 1989년부터 신경외과환자에서 요추부 뇌척수액 배액술, 성인에서 최초의 DHCA (deep hypothermic circulatory arrest)의 적용, 1990년에 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의 시행, thoracic epidural anesthesia (최초는 1989년경), Robertshaw tube를 이용한 일측 폐환기 (Carlen's tube 도입은 1970년대), High frequency jet ventilation, Cell saver를 비롯한 자가수혈법의 사용, 모든 수술실에 인공호흡기를 도입하는 등의 많은 발전이 있었다. 주요 마취약제의 도입 상황을 살펴보면 enflurane (1975년), pancuronium (1975년), thalamonal (1977년), isoflurane (1983년), fentany (1987년), vecuronium (1987년) 등이 이 시기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마취전처치제로 1974년경부터 atropine과 diazepam (Valium®)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981년경에 glycopyrrolate (Robinul®)를, 1985년부터는 lorazepam (Ativan®)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심혈관계약물로서 nitroprusside와 dopamine은 1970년대에, phenylephrine은 1983년에, dobutamine과 nitroglycerine은 1986년에 도입되었고, racemic epinephrine이 1987년에 도입되어 폐내진동환기법에 사용되었다. 도약기 (1990년 - 1999년) 1990년 아세아-오세아니아 마취과학술대회(회장: 곽일룡 교수, 조직위원장: 김광우 교수)를 서울 힐튼호텔에서 성공리에 개최하였다. 1990년 10월 부터 통증치료를 시작하였으며, 1991년 9월 2일 통증진료실이 개설되어 통증환자에 대한 외래진료가 시작되었다. 통증진료실의 초대실장은 김광우 교수였으며, 1992년 1월부터 이상철 교수가 실장을 맡게 되었다. 1991년에는 서울대학교병원운영 시립영등포병원이 보라매병원으로 확장 개원하게 됨으로써 마취과 전공의의 파견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1992년 4월 15일에는 김광우 교수가 서울대학교병원의 제1진료부원장에 취임하였고 1992년 7월 16일에 김용락 교수가 과장 및 주임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한편 1992년 7월에는 뇌사자의 간을 절제하여 간의 일부분만을 이식하는 수술의 마취를 시행하였다. 1993년에 치과병원이 새로운 건물로 확장 이전하면서 치과진료부 내에 구강마취과가 새로 개설되어 염광원 교수가 초대 과장 및 주임교수로서 근무하게 되었다. 1994년 3월에 심장이식 수술의 마취를, 1996년 9월에는 폐이식 수술의 마취를, 1997년에는 심장-폐 이식술의 마취를 각각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1995년 이후에는 마취과전문의의 세부전공별로 연구회가 창립되기 시작하였으며 본 교실의 여러 교수들이 회장 등의 중요 직책을 맡아 연구회의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대한뇌신경마취연구회가 창립되어 오용석 교수가 총무이사에 이어 1997년 2월부터는 부회장을 맡게 되었고, 1996년 3월 김성덕 교수가 새로 창립된 대한소아마취연구회의 초대회장에, 5월 오용석 교수가 대한정맥마취연구회의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1월 김용락 교수가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에 피선되었고 1997년 임기를 마친 후 다시 이사장에 피선되었다. 1997년 1월 함병문 교수가 대한심폐혈관마취연구회 초대회장을 맡게 되었다. 1998년 10월부터 2년간 김성덕 교수가 대한마취과학회 이사장직을 수행하였으며, 학회 임원진으로 함병문 교수가 간행이사, 오용석 교수가 보험이사 업무를 수행하였다. 1999년 7월 대한호흡관리학회가 창립되어 함병문 교수가 초대 회장을 맡게 되었다. 1996년 2월 곽일룡 교수가 정년퇴임하였으며, 1996년에는 도상환 선생과 박재현 선생이 기금전임강사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1996년 4월 김광우 교수가 세계 마취과학회의 집행위원으로 피선되었고 1997년 3월에는 대한의학회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1996년 7월 16일 김성덕 교수가 주임교수 및 마취과장으로 취임하였고 1996년 7월 20일부로 김종성 교수가 소아마취 분과장 및 소아수술실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김성덕 교수가 본원 수술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도상환 선생은 1997년 9월 전임교수로 새로이 발령을 받았다. 또한 1998년 3월에 김희수 선생이 기금조교수로 1999년 4월에 임영진 선생이 기금조교수로 신규 임용되었다. 1998년 3월 김종수 선생이, 1999년 3월 민성원 선생이 보라매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 임용된 교수들의 세부전공 분야는 도상환 교수가 부인과 및 정형외과마취, 박재현 교수가 심폐마취, 임영진 교수가 정형외과 및 이비인후과마취, 김희수 교수가 소아마취로 구분되어 각 분야별로 진료 및 연구에 정진하였다. 또한 이제까지 외국에 나가서 선진의료를 배워오기만 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90년대 들어서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선진의료 습득을 위해 연수를 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본 교실에도 1992년에 연변의대의 마취과 주임의사인 엄상묵 교수가 1년간 장기연수를 실시하였으며, 1995년 11월에는 역시 같은 연변의대의 조용철 교수가 1년간 장기연수를 시행한 바 있다. 또한 국내 마취과학의 발전을 위하여 각종 연수교육 및 심포지엄을 실시하였다. 1993년 7월 의학연수원에서 "통증치료 1993"이라는 주제 하에 연수교육을 실시하였고, 1994년 7월에는 의학연수원에서 본 교실의 주관 하에 "Management of difficult airway"라는 주제 하에 연수교육을, 1995년 3월 25일 의학연수원에서 "장기이식 환자의 마취관리"라는 주제 하에 연수교육을, 1995년 5월 6일 "뇌신경마취" 연수강좌를, 1996년 2월 24일 곽일룡 교수 정년퇴임 기념 심포지엄을, 1997년 5월 17일 의학연수원에서 "산과마취의 실제"라는 주제 하에 연수교육을 실시하였다. 1996년 12월, 1997년 3월, 1997년 12월 , 1998년 2월에 총 4회에 걸쳐 본 교실 주관 하에 통증 연수교육을 실시하였다. 매주 토요일 증례토의된 내용을 오용석 교수가 주관이 되어 편집하여 92, 93, 94년 "서울대학교병원 마취증례집"으로 발간하였으며 이 책자는 다른 병원의 의사에게도 판매되어 마취를 전공하는 의사들의 환자관리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1997년 7월부터는 인터넷에 본 교실의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세계화에 발맞추는 마취과의 위상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6년 9월 부터는 오용석 교수가 수술 후 환자들에게 IV-PCA (intravenous patient-controlled analgesia)를 이용한 통증치료를 시작하여 환자 및 외과 의료진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수술 후 통증 치료 약제를 준비하는 전담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다. 1997년 7월에 본원의 수술실이 4실(E 로젯) 추가되면서 마취과 전공의의 업무가 과중해져 이에 도움을 주고자 각 로젯마다 한 명의 정규 간호사를 마취간호사로 배정하여 마취과 의사의 업무를 보조하도록 하였다. 또한 1997년 8월 4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마취과 외래(수술전 평가실)를 개설하여 환자의 수술전 평가를 외래 수준에서 시행함으로써 마취과의 진료수준 향상을 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998년 12월 5일 에 본교실의 창설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의학연구소 강당에서 개최하여 국내외에서 다수의 연자를 초청하여 대다수 마취과 동문들의 참석하에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또한 2년여의 준비 끝에 ‘서울대학교 마취과학교실 40년사’를 발간하여 본 교실의 과거 역사를 정리하는 귀중한 자료로 삼게 되었다. 1999년 한 해는 서울대학교병원 마취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셨던 마취과의 원로 교수 두 분이 지병으로 인해 타계하신 해였는바, 김광우 교수께서 5월 9일 63세로, 곽일룡 명예교수께서 8월 8일 68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한편 김성덕 주임교수에 의해 국내에서 최초로 소아마취 지침서인 '임상소아마취'가 1999년 3월에 발간되었고, 1999년 5.26일 부터 4일간 일본 삿포로에서 개최된 제16차 한일합동 심포지엄 및 제46차 일본 마취과학회에 김성덕 교수, 민성원 교수, 이가영 선생 등이 참석하여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삿포로의 Royton호텔에서 개최된 제16차 한일 심포지엄에서 김성덕 교수가 한국을 대표해 축사를 하였고, 한일 마취과학 발전에 공이 컸던 고 김광우 교수에 대한 참가자의 묵념과, Namiki 일본학회장의 조사, 그리고 고 김광우교수에 대한 명예회원증을 수여 받았다. 1999. 6. 7. 의과대학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호흡생리 강의에 마취과 김성덕 교수가 처음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로 약리학 등 기초의학 분야의 학생강의에 마취과 교수가 강의를 지속하여 옴으로써 마취통증의학을 학생들에게 조기에 소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1999년 7월 13일 에는 대한의학회(회장: 지제근) 이사회에서 마취과의 표방 전문과목명을 “마취통증의학과”로 변경하는 안이 전격적으로 통과되었으며 한 달 후인 1999년 8월 27일 대한의사협회(회장: 유성희) 상임이사회에서도 똑같은 명칭 변경 안이 통과되어 표방 전문과목의 명칭 변경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한편 1999년 10월 15일 에는 서울대학교병원에 전자처방(OCS)이 도입되었으며, 1999년 11월 5일 제44차 대한마취과학회 종합학술대회에서는 학회에서 처음 실시하는 전공의 자율평가 우수자에 대한 시상에서 4년차 윤희조 선생이 년차 최우수자로 표창을 받았고, 노영진 교수가 마취과학회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12월 에 김성덕 교수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소아마취 전문잡지인 'Paediatric anaesthesia'의 편집자문위원으로 위촉받아 국제학술논문의 교정활동에 참여해 오고 있다. 마취과학의 발전영역이 넓어짐과 동시에 외과계와의 협조를 긴밀히 한다는 차원에서 수술부장을 마취과 교수로 임명하였는데, 초대 수술부장으로 김광우 교수가 임명된 이래 2대에 김용락 교수, 3대에 함병문 교수, 4대에 고홍 교수, 6대에 김성덕 교수가 계속하여 수술부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새로운 마취약제 및 수기로는 labetalol (Trandate®)이 1990년에, propofol이 1992년에, midazolam이 1992년에, sufentanil이 1996년에, rapid infusion system이 1993년에, transesophageal echocardiography가 1994년에, thromboelastography가 1996년에, IV-PCA가 1996년에 각각 도입되었다. 1990년의 마취 건수는 본원에서는 전신마취 8,732, 부위마취 2,225, 국소마취 7,538, 응급수술 857 이었으며, 소아병원에서는 수술건수가 4,484건 이었다. 1995년의 마취 건수는 본원에서는 전신마취 12,991, 부위마취 2,581, 국소마취 5,180, MAC 1,820, 응급수술 3,512건 이었으며, 소아병원에서는 수술건수가 5,019건 이었다. 21세기, 새로운 시작 (2000년 - 2008년) 2000년 4월 15일 대한척추통증연구회가 창립되어 이상철 교수가 초대회장으로 피선되었으며, 6월 30일 아시아-태평양 호흡관리학회(조직위원장: 함병문 교수)를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성공리에 개최하였다. 2000년 7월 김성덕 교수가 마취과장 및 주임교수, 수술부장, 중환자관리부장에 재임용 되었다. 2000년 9월에는 박재현 교수가 전임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2001년 3월 안원식 선생이 기금조교수로서 근무를 시작하였고, 노영진 선생이 보라매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2001년 부터는 국립암센터와의 모자병원협약에 따라 전공의 정원 증가가 이루어졌으며, 국립암센터로 전공의를 파견하여 오고 있다. 2001년 9월 8일 “통증관리” 연수강좌를 본 교실의 주관 하에 실시하였다. 2001년 3월부터 2002년 6월 까지 고홍 교수가 대한산과마취학회 회장을 수행하였다. 2001년 11월 19일 김성덕 교수가 보라매병원 원장으로 취임함에 따라 2001년 11월에는 함병문 교수가 마취과장 및 주임교수, 수술부장, 중환자관리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였다. 김성덕 교수는 보라매병원 원장으로서 2006년 11월 까지 4년간 근무하였다. 2002년 2월 에 고홍 교수가 명예퇴직 하였고, 2002년 5월 박종두 선생이 기금조교수로, 2002년 6월 김용철 선생이 전임부교수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한편 표방 전문과목 명칭 변경을 위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어 2002년 3월 30일 자로 표방 전문과목 명칭이 마취통증의학과로 변경되었다. 또한 이 해에는 촉탁교수와 임상교수 제도가 도입되어, 2002년 6월에 4명의 촉탁교수가 본원에 처음으로 임용되어 근무를 시작하였다. 2003년 3월 12일에는 수술부 내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약국이 개설되어 수술환자의 투약업무 관리의 질적 향상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E 로젯에 수술실 2개가 증설됨에 따라, D, E 로젯의 수술 환자를 위한 제2회복실을 신설하였으며, 수술실과 외과계 중환자실간의 전용승강기를 설치하여 수술실과의 접근성을 수월하게 하였다. 2003년 4월에는 윤태균 선생이 임상조교수로 신규임용 되었다. 2003년 4월 26일 본원 통증치료실이 외래 진료실 2개, 외래 침상수 6개, 시술실 2개로 보수 확장하면서 기존에 일반 수술실을 공유하면서 통증치료를 위한 시술을 시행해야 했던 어려움이 해소되었으며, ‘통증센터’로 명칭이 바뀌었다. 분당병원이 개원함에 따라 2003년 9월 황정원, 전영태, 이가영, 한성희, 이평복 선생이 분당근무 임상조교수로 근무를 시작하였고, 2003년 10월에는 임영진 교수가 전임교수로 새로이 발령을 받았다. 2004년 3월에는 박금숙 선생이 임상조교수로 임용되어 근무를 시작하였고, 2004년 4월에는 김경옥, 박희평, 윤미자, 서명신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임상조교수로서 새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2004년 10월에는 김진희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전임교수로 발령 받았다. 2004년 7월에는 김종성 교수가 마취과장 및 주임교수, 수술부장, 중환자관리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였으며, 후임으로 김희수 교수가 소아마취 분과장 및 소아수술실장을 맡게 되었다. 2004년 이상철 교수가 대한IMS학회의 회장을 맡게 되었으며, 12월부터는 2년간의 대한통증학회 회장직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2004년에 이상철 교수가 World Society of Pain Clinicians의 차기회장으로 피선되었으며, 2005년 2월에는 함병문 교수가 명예퇴직을 하였고, 2005년 4월에는 전윤석 선생과 정철우 선생이 임상조교수로 신규 임용되어 본원에서 근무하게 되고, 한성희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신규 임용되었다. 2005년 4월에는 오아영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임상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2004년 10월 15일 EMR (전자의무기록)의 도입과 함께 전자마취기록의 시대가 열리면서, 종이 마취기록지는 수술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2005년 2월부터 목요일 아침 case conference를 본원과 보라매병원간에 화상회의로 진행하기 시작하였으며, 4월부터 분당병원도 합류하여 본원, 분당, 보라매병원 간의 화상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2005년 11월에는 김종성 교수가 대한마취과학회 차기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2006년도에는 3월 8일 김용락 교수가 의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고별강연을 하였으며, 8월 31일에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맞이한 이후 부천 세종병원으로 이직하였다. 2007년부터는 국립암센터와도 화상회의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본원-분당병원-보라매병원-국립암센터의 4개 병원간 화상회의를 통한 증례 토의를 시행해 오고 있다. 2007년 3월에 전영태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임용되었으며, 2007년 1월 15일에 분당병원 과장으로 재직하던 오용석 교수가 퇴직함으로써 2007년 4월부터는 도상환 교수가 새로운 분당병원 과장으로 근무를 시작하였다. 2007년 9월에는 황정원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기금부교수로 임용되었다. 2007년 9월에는 김종성 교수가 소아진료부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후임으로 이상철 교수가 마취통증의학과장 겸 마취과학교실 주임교수, 수술부장 및 중환자진료부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이어 10월에는 이상철 교수가 김종성 교수에 이어 연속으로 대한마취과학회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2007년도에는 16명의 1년차 전공의 정원 중 3분의 1에 가까운 5명이 중도 사직함으로써 교실 역사상 최초로 후기모집 전공의 3명을 모집하여 9월부터 수련을 시작하였다. 또한 새로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는 1년차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교실의 교수가 멘토를 담당하는 멘토제도를 2008년 3월부터 시작하였다. 한편 2008년 3월 1일부터 의과대학내 교실 명칭이 기존의 마취과학교실에서 마취통증의학교실로 변경이 되었다. 2008년 3월에는 박희평 선생이 전임조교수로, 전윤석 선생이 기금조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보라매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허진 선생이 임용되었다. 또한 3월 18일에는 그동안 대학의학회 부회장으로서 의학발전에 기여해 왔던 김성덕 교수가 대한의학회의 차기 회장에 선출되었다. 2008년 5월에는 로봇을 이용한 수술을 위해 수술실 1실(E6)이 증설되어 5월 13일부터 로봇을 이용하는 수술을 위한 마취를 시작하였다. 2000년 마취과에는 전임교수 10명, 기금교수 4명(본원 2명, 보라매 2명), 전임의 5명, 4년차 전공의 7명, 3년차 전공의 8명, 2년차 전공의 8명, 1년차 전공의 11명과 본원과 소아병원을 합쳐 15명의 인턴이 근무하였다. 2000년의 마취 건수는 전신마취 7,604예, 부위마취 10,334예, MAC 12예, 국소마취 6,966예 이었다. 소아병원에서는 4,243예의 수술을 시행하였다. 수술후 자가통증치료는 4,922건, 통증치료실의 외래환자수는 7,227명, 수술장 시술건수는 1,751건, 마취과 수술전 평가실 환자는 1,403명 이었다. 2000년도에 발표된 40편의 논문 중 국내 전문학술지에 32편, 해외 전문학술지에 8편이 발표되었다. 2005년 마취과에는 전임교수 12명(본원 10명, 분당 2), 기금교수 6명(본원 2명, 분당 1명, 보라매 3명), 임상교수 15명(본원 4명, 분당 9명, 보라매 2명), 촉탁교수(본원 6명, 분당 2명), 전임의 12명(본원 8명, 분당 4명)이 근무하였다. 전공의 정원은 본원 9명, 분당병원 3명, 보라매병원 2명, 국립암센터 1명이었으며, 4년차 9명, 3년차 12명, 2년차 14명, 1년차 15명이 근무하였다. 본원과 소아병원을 합쳐 15명의 인턴이 근무하였다. 2005년에 본원은 26개 중앙 수술실, 1개의 방광경실, 2개의 산과 수술실, 1개의 혈관 조영실에서, 소아병원은 8개 수술실에서 시행되는 수술 환자에 대한 마취관리를 담당하였다. 2005년 서울대학교병원 본원에서 마취진료 24,144건 (전신마취 14,372, 부위마취 3,018, MAC 1,868, 수술장 통증시술 4,886건), 국소마취는 4,634건을 시행하였으며, 수술후 자가통증치료는 8,687건 이었다. 소아병원에서는 5,950건의 수술을 시행하였다. 통증센터 외래환자수는 12,369명, 수술전 평가실 환자는 3,158명이었다. 2005년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중앙수술실 20개(당일수술실 2실 포함), 분만장 수술실 1개, 혈관조영실 1실에서 시행되는 수술 환자에 대한 마취관리를 담당하였다. 분당병원 마취진료 건수는 17,967건 (전신마취 12,344건, 부위마취 2,815건, MAC 2,808건)이었고 이중 당일수술실을 이용한 환자는 4,935명이었다. 통증치료실은 외래 11,180명, 입원 314명으로 늘어났다. 2005년도에 본원에서는 68편의 논문(국내 전문학술지 43편, 해외 전문학술지에 25편)이, 분당병원에서는 28편의 논문(국내 전문학술지 14편, 해외 전문학술지에 14편)이 전문학술지에 발표되었다. 2007년도에는 23편의 국내 전문학술지 주 연구논문과 27편의 해외전문학술지 주 연구논문이 발표되었으며, 수술전 평가실 외래에서 4,580건의 진료를 시행하였고, 마취 건수는 21,307건(전신마취 15,448건, 부위마취 3,162건, MAC 2,697건)이었으며, 통증센터에서는 23,470건(수술실 치료 건수 7,348건 포함)의 시술 및 23,301건의 외래 진료를 시행하였다. 2008년 6월 현재 본원은 전임교수 9명, 기금교수 3명, 임상교수 3명, 촉탁교수 7명, 전임의 7명 등 총 29명의 전문의와 전공의 60명이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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